다섯. 인천 갈산동

by In l ll

구불구불 골목 진 낡은 길과 삐죽삐죽 튀어나온 벽돌 건물, 그 벽면에 얼룩진 뜻 모를 낙서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아이들. 골목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큰 도로와 그 건너편에 늘어선 높은 아파트, 초등학교. 지금도 그곳에 가면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만 있을 것 같은 익숙한 모습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다섯 살. 모든 게 크고 넓게만 보이던 세상은 단순하고 재밌게만 보였다. 동네 아이들은 서로 이름조차 잘 몰라도 금방 친구가 됐고 그 친구들은 밖을 나서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절 디지몬 카드, 장난감, 딱지, 팽이. 어디든 자리를 깔고 앉으면 금방 놀이터가 됐고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은 창문 밖으로 자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흩어졌다가도, 금방 다시 모이곤 했다. 좁은 골목은 오히려 차를 들이지 못해 비교적 안전한 놀이터가 됐고 낮은 층고는 자녀를 알아보기 쉽게 했다. 그 동네를 나서지 않더라도 놀 곳은 충분했기에 우리는 굳이 골목을 나서지 않았지만, 가끔 술래잡기 비슷한 놀이를 할 때 골목 끝을 마주하면 마치 넘지 못하는 세상 끝자락에 발을 디딘 것처럼 골목 틈 사이로 씽씽 달리는 차들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그 너머는 어른들이 그어놓은 암묵적인 울타리 밖이었고,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뛰놀던 개구쟁이였던 나에게도 그곳은 나아가지 못하는 곳으로 마음속 깊이 못 박혀 있었다. 그러나, 왜, 왜, 물음을 남발하던 어린아이에게 막힌 곳을 향한 호기심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었고 결국 엄마를 졸라 그 골목 밖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나는 마치 새로운 세상에 혼자 동떨어져 나와 커다란 세상을 돌이켜보는 것처럼 내가 있던 건너편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 작은 아이에게 그것은 이륙하는 비행기 창문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고 멀어지는 지구를 보는 것과 같았다. 곧 신호가 바뀌어 지나온 길을 차들이 쌩쌩 움직이며 막아섰을 때도 나는 이젠 작게만 보이는 건너편 골목 틈 사이를 이쪽을 동경하는 내 자신이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빌라 살 때 아쉬웠던 건 많지. 근데 너희들 편히 놀 수 있는 놀이터 하나 없던 게 제일 마음에 걸렸어."


그렇게 손 꼭 잡고 간 곳은 아파트 동네 놀이터. 그곳은 그네 미끄럼틀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정글짐까지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었다. 엄마는 자주 우리를 데려가진 못했지만 한 번 갈 때면 우리가 몇 시간을 놀든 그곳 구석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때 그 시절, 나의 건너편을 향한 단순한 호기심이 엄마에게는 넓은 아파트와 놀이터를 향한 동경으로 보였고, 그게 나중에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는 엄마의 큰 결심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많은 빚을 져가면서까지.

언젠가 지나가다 이곳에 들러 어린 시절 추억을 돌이키는 중에, 지금 우리 집이 더 좋은 거 같은데? 하고 내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엄마의 입이 터지는 날이 있었다는 걸, 단순한 추억을 돌이키는 우리와 달리 그 시절 녹록지 않던 꽉 막힌 하루들이 턱턱 차오르던 순간에, 막힌 혈을 뚫듯 그 한마디가 엄마에게 안심의 한숨을 내뱉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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