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실로 향하는 2층 계단과 식당으로 이어지는 지하 계단. 건물 옆 틈 사이로 난 골목을 통해 이어지던 식당 뒤편. 그 좁은 공간에서 딱지를 치거나 뛰어놀던 기억. 교회를 처음 갔던 순간은 흐릿하지만, 수없이 뛰어놀던 그 공간에 관한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특히 매년 이맘때쯤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는 걸 기다리곤 했다.
산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철저히 지키던 그런 동심 많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믿었다. 가끔 새벽에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눈이 떠지더라도, 오히려 눈을 떠 꼭 감으며 그 부스럭거리는 포장지 속에 내가 갖고 싶어 했던 물건이 들어있는 걸 상상하곤 했다. 나는 주섬주섬 나에게 옷을 입히는 가족들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며, 교회에 도착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할 때까지 받은 물건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교회도 분명 처음에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었을 터인데, 그곳에 적응하는 기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마음 놓고 옷자락을 붙잡을 수 있는 부모님과 누나가 함께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른들의 다정한 표정과 말투, 쉽게 형언할 수 없는 따듯한 분위기와, 할머니처럼 어느 정도의 어리광은 귀엽게 봐주는 선생님들,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던 몇 되지 않던 또래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척지던 집주변의 부단하던 일상과는 거리감 있게 느껴져서일까. 어린이 예배를 위해, 평일 비슷하게 집을 나서야 했음에도, 일요일은 오히려 토요일보다 기다려지던 날이었다. 특히 연말이 되면, 예수님의 생일이라며 성탄 준비가 한창이었고, 요즘과 다르게 월초에 방학을 하던 시기라, 그 특유의 일상을 벗어나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던 순간들을, 나는 여전히 정말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섯 살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는, 사람이 많아지며 장소를 이동하고, 다른 교회와 합치는 등, 약간의 변혁이 있었지만, 내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곳,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달라진 건 나였다. 대학에 가면서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수험생 때도 매주 가던 교회에 가지 않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고, 군대에 가고 본가 또한 완전히 이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그 교회는 이젠 몸도 마음도 너무 먼 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언젠가 마음이 너무 힘들어질 때, 근처에 교회나, 교회 공동체를 찾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어릴 때만큼의 유대감은 얻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뜨문뜨문 줄이기 마련이었다. 가끔 부모님을 따라 근처 교회에 나가면, 어린 시절 순수하고 따듯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미소가, 어색하고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걸 보며, 결구 내가 그리워했던 교회의 분위기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절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