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어? 묻는 말에, 엄마는 네가 알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 할아버지에 관한 유일한 기억은, 할머니가 나가자마자 만화 영화를 보는 나에게 회초리를 휘두르던 모습이었다. 나는 손을 싹싹 빌며 무릎을 꿇은 채로 회초리를 이리저리 피했고, 그때마다 알록달록한 푸른 빛 장판이 나 대신 움찔움찔 들썩였다. 어릴 적 그는 유독 나에게만 엄한 듯 보였고, 나는 그게 몹시도 억울했다. 누나의 얘기를 들어보면, 할아버지와 둘이 손잡고 동네 이발소에 가거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할머니를 마중 가는 등, 여러 일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딱히 그런 게 없다. 어쩌면 내가 맡겨질 때부턴 이미 할아버지에게 치매 증세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거리를 매일 배회하시곤 했으니까.
어쨌든 그렇다고 나도 쉽게 만화 영화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 좁은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도 없을 때 할만한 건 티비 보는 것 말고는 없었으니까. 나는 그때부터 맞서는 법을 배웠다. 할아버지가 회초리를 들면 같이 무기가 될 만한 걸 집어 들었고, 개놈시끼, 쌍놈시끼 배운 욕을 똑같이 써먹었다. 이러한 싸움은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천으로 올라와 같이 살게 된 초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힘이 붙었고, 할아버지는 약해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땐가, 할아버지가 주워 온 나뭇가지 회초리에 맞서 나는 효자손을 휘둘렀는데, 내가 세게 휘두르자, 할아버지의 회초리가 부러져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중에 할머니를 통해서 그의 한쪽 팔에 시퍼런 멍이 들었던 것을 알았을 때,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언제나 일방적인 악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보다 더 못된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두들겨 패는, 그런 패륜적인 아이.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가 회초리를 들었다고 해도, 나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적당히 휘두르며 겁을 주거나, 맞아도 아프지 않게 힘을 조절하며 때리시거나 했다. 어린 시절 그 기억도, 내가 요리조리 잘 피했던 게 아니라, 사실 일부러 빗나가게 바닥을 탁탁 내려치시던 게 아닐까. 다만 그 시절 그 기억이, 나에게 너무 서럽게 남았을 뿐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는 점점 더 어려지셨고,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그와 거리가 생겼다. 학원을 마치고 저녁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는 한탄하듯 그날 있었던 할아버지의 기행을 말하곤 했다. 엄마가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과자를 몰래 빼먹거나, 쓰던 숟가락을 아무도 모르게 다른 수저 사이에 섞어놓는 작은 일부터, 바지에 실수를 하시고 말하지 않아 온 이불에 전부 묻는 큰 일까지. 나날이 할머니는 점차 힘에 부쳐갔다. 결국 계속되는 엄마의 설득에,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됐다. 그 후로 나도 기숙사에 들어가며 할아버지를 거의 못 보게 되었지만, 가끔 할머니를 따라 요양원에 갈 때마다, 이제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요양원에 오기 전, 집에 있었을 때 그의 하루를 상상해 보곤 했다. 친구 하나 없는 아파트 단지 안을 아침부터 배회하다, 점심때가 되면 부엌 한편에 있는 사인 식탁에 혼자 앉아 할머니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노인정에 간 할머니를 뒤로하고, 방에서 티비를 켜놓고 혼자 화투패를 맞추던 하루를. 언젠가 내가 방에 있을 때면, 열린 문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다, 눈이 마주치면 도망가시곤 했는데, 이제는 그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흔하나, 할아버지는 결국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모두가 그를 호상이라고 말했다. 큰 걱정 없이 오래 살다 고통 없이 주무시듯 가셨다고. 장례식 마지막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자식들 아무도 들지 않아, 며느리인 엄마와 내가 번갈아들던 때를 떠올리며, 그의 모든 행동이 엇나간 마음에서 시작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