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바닷가 마을, 주문진

by In l ll

온전한 첫 기억이 무엇이냐 하면,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세 살 때가 맞는지도. 다만, 익숙한 짠내 섞인 바다 내음이 좁고 골목 진 길을 따라 달동네 끝에 비스듬히 누운 낡은 기와집에 온종일 흘러, 녹슨 자물쇠가 덜렁 매달려 있는 그 미닫이 철문 앞 돌판에 쭈그려 앉아 밋밋한 생미역을 알맞게 오물거리던 기억이 있다.

또래도 별로 없는 시골 마을에서, 작은 tv가 유일한 오락이었으니, 온 동네를 헤집고 싶다가도 할머니나 엄마 없이는 혼자 멀리 가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라, 시장에 나간 할머니든, 주말이면 오는 엄마든 매번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던 게 아니었을까.


누구나 그렇진 않았겠지만, 유년기를 엄마보단 할머니와 보낸 아이들이 딱히 특별하진 않을 때였다. 우리 집도 맞벌이였고, 내가 세 살이 될 때쯤, 누나가 유치원을 위해 부모님이 있던 인천에 오게 되면서 나는 그와 엇갈리듯 친가 시골에 맡겨졌다. 강원도 강릉 주문진. 지금은 터널도 뚫리고 ktx도 생기면서 전보단 쉽게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게 누구에게나 익숙한 곳은 아니었다. 특히 주문진은 흔히 아는 강릉이라기보다는 위쪽 양양과 가까운 항구도시라, 더 깊은 바닷가 시골 중 하나였다.


황토색 페인트를 덧칠한 꺼끌꺼끌한 시멘트 벽면, 그 벽면에 잠겨 은은히 골목에 배인 파란 색감을 더한 지하실 비슷한 냄새가, 이젠 다신 맡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향수였다. 가끔, 정말 가끔 처음 와본 낯선 시골에서 비슷한 냄새를 맡을 때면, 한참을 그곳에 머물러 폐를 열고 몸 깊숙이 그 냄새를 담아가려 노력하기도 했다.

햇수로 보면 많아도 2년, 그것도 기억도 뚜렷하지 않은 세 살, 네 살의 맡았던 냄새지만, 지금까지도 그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 그 시절 코끝에 담았던 그 냄새가 이리저리 형체를 갖추던 시기에 나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나 자체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고.


이렇듯, 모든 기억, 냄새, 분위기, 그때마다의 생각. 고통, 어려움들이, 안에서 나오든 밖에서 흘러들든, 결국 지금의 형체를 이룬 나의 한 부분이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치 세밀한 건강검진을 하듯 나를 이룬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기로 했다. 검진이 끝나면 지금보다는 이 삐걱거리는 몸뚱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