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아랫집, 유일했던 또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여자아이였는데, 동네 다른 친구가 없어 자주 같이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들이 그 집 마루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으면, 그들의 시선이 닿는 앞마당에서 손장난을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어느 날부턴 세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 집 아저씨가 친구를 위해 가져다 놓은 걸로 기억한다. 주로 손잡이를 잡아 운전하는 건 나였지만, 그도 불안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꼭 잡고 뒷좌석에 타곤 했다. 그래서 정작 사고가 일어난 후, 오히려 그가 별로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운전을 해보라고 한 건 나였을 테니까.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였다. 자전거 타는 게 점점 익숙해지면서 좁은 마당이 금방 싫증이 났을 테고, 아마도 내가 떼를 써 누군가 골목으로 자전거를 올려주지 않았나 싶다. 할머니들의 주의가 점차 옅어질 때쯤, 그가 처음으로 손잡이를 잡고 페달을 밟았을 때, 울퉁불퉁한 골목 바닥에 손잡이가 이리저리 뒤틀렸고, 곧 바퀴 한쪽이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빠져, 우리는 자전거와 함께 뒹굴뒹굴 계단을 굴렀다. 뒷좌석에 있던 나는 무서워하는 그를 순간 감싸안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마를 긁혀 얕게 피가 나는 것 외에는 크게 다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후로 잠깐의 기억이 없다. 할머니가 말하길, 그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의 울음소리에 현장으로 달려온 할머니는, 울지도 않고 눈만 깜박거리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눈을 뜬 곳은 철로 된 딱딱한 병원 수술대 위였는데, 창밖에서 의사 선생님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사건으로 나는 팔에 꽤 오랫동안 붕대를 했다. 네 살 때 사진을 보면 어디를 가든 그 조그만 몸에 커다란 석고붕대와 팔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다. 지나고 나니 그냥 탈 많았던 사고뭉치 일화 중 하나로 남긴 했는데, 당시를 생각하면 왜 할머니가 나를 안절부절못하며 키웠는지 이해가 되긴 한다. 나는 자주 다쳤고, 아팠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더 내 옆에 붙어 있었고, 엄마도 가능하면 될 때마다 시골에 오려고 했던 거 같다.
어쩌면 나를 더 봐달라는 하나의 시위였을지도 모르겠다.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많은 걸 이해하지는 못했을 나이니까. 설령 조금 다치더라도, 누군가의 따듯하고 걱정 어린 눈빛이 나를 더 다독여줬으면 하고 바랐던 게 아닐까.
친구는 나를 보고서 한참을 울었다. 딱딱한 석고붕대를 만지며 정말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나도 이마에 난 그의 상처를 호호 불어주던 기억이 있다. 자기도 놀라고 아팠을 텐데 내 팔을 꼭 붙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 애정 어린 관심이 너무 애틋하고 소중해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그의 얼굴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언젠가 내가 좀 커버렸을 때쯤,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가 그 집 아저씨와 딸을 만났다며 사진을 보여줬었는데, 왠지모를 그리운 기분이 들었었다. 시간이 흘러, 그 집도 이사를 하면서 그 아저씨와 연락이 완전히 끊겼지만, 가끔, 아주 가끔 생각이 난다. 여전한 그 골목 한 편에, 높게만 느껴졌던 계단과 그 밑으로 난 작은 마당이 보일 때마다, 더 이상 친가도 없는 그 골목을 가끔 지날 때마다, 너도 그 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하며.
언젠가 그를 다시 볼 날이 생긴다면 이제는 자전거를 잘 타냐고 묻고 싶다. 그 친구에게도 그게 하나의 그리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가끔 지나가다 들러볼 만한, 그런 어린 시절 소꿉친구와의 추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