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고집불통

by In l ll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킬수록, 나의 안전에 관한 가족들의 경각심은 올라갔지만, 사건을 여러 번 거듭해도 그들이 완전히 대처하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때는 아마도 누나의 생일, 겨울 끝자락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던 늦은 퇴근길, 짧은 팔다리의 '복(福)'자가 새겨진 돼지 인형을 들고 돌아온 아빠는, 울음을 그치지 않던 나에게 그 인형을 들려주었는데, 나는 여전히 누나의 인형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무리 누나의 생일일지라도, 나만 선물을 받지 못하는 건 어린 나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아빠는 결국 대형마트를 헤집어 새로운 인형을 하나 사 왔지만, 미적인 감각이 많이 달랐는지, 누나와 엄마가 달라붙어 돼지 인형의 장점을 아무리 나열해도 결국 나의 울음을 그치게 만들진 못했다. 할머니는 자주 최씨고집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나온다는 건 결국 온 가족이 나에게 항복했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날도 결국 다음 날 새로운 인형을 사러 간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나는 울음을 그쳤다.


"네가 그 똑같은 악어 인형들 무리에서, 직접 손가락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아주 신중히 골랐어. 그때부터 아주 남달랐지 그냥."

내 거는 이렇게 손들도 다 구분되어 있어. 그리고 누나 거는 옷도 없는데, 내 거는 옷도 입고 있다? 하면, 누나는 질려하는 표정으로 알겠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또 언젠가 아마도 누나의 생일에, 익숙하게 손을 내밀던 나에게 아들 건 없는데? 라고 말하는 아빠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거실을 뒤집고 울기 시작하자, 아빠는 화들짝 놀라 숨겨둔 선물을 바로 앞으로 내밀던 때도 있었다.


이런 나의 지나친 어리광은, 점차 그들에게 익숙해졌고,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좋은 게 좋은 대로, 큰 일이 아니라면 웃으면서 들어주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떼를 쓰거나 울기부터 시작하는 일이 잦았고, 나는 이 버릇을 꽤 오랫동안 고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자주 눈물을 쏟거나 주먹을 휘둘렀고, 그로 인해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은데, 그것을 관철할 만한 이성적인 설득력은 갖추지 못했던 시절. 결국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세상과 수없이 부딪히며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잦은 분쟁 속에 머물렀다.

이제 와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때의 그 고집불통의 시간이, 역설적으로 모난 곳 없이 유순하게 살아가려는 지금 태도를 갖추는데 하나의 시발점이지 않았을까. 결국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에서부터 평화를 찾는 방법을 배웠다.

그 평화 안에 자리한 상처투성이의 마음이, 여전히 분쟁의 흔적을 조용히 감싸안고 있지만, 가끔, 아주 가끔, 별것 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가볍게 베인 상처들이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감당하고 살아간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그 잠깐의 시간에, 모난 돌덩이 같은 마음을 온전히 부딪치던 어린 시절이 그토록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닫곤 한다. 단 한 순간도 감정을 채우지 않는 순간이 없던 그 어린 시절이, 조금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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