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멀리서부터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가장 안쪽, 굳건히 자리한 것만 같던 기둥이,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무너져 내리면, 중심을 잃어버린 삶은 그 위에 쌓아 올린 모든 것을 게워 내듯 토해낸다.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 유독 어두웠던 버스 안, 그 안에서 고개를 숙인 엄마. 외할머니는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암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내시경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암 덩어리들이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엄마는 이십 년이 지나 그 얘기를 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린 듯 보였다. 바쁜 하루에 아이들을 친가에 번갈아 맡기면서 시부모님은 자주 뵈었어도, 그만큼 당신의 오랜 가족은 신경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시대의 거센 풍파에도 굳건히 일어서 가족을 지키던 할머니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나서 3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장례식 마지막 날, 엄마를 보러 간다는 사실 하나만을 듣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찾은 영구 버스 안은, 네 자매의 울음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엄마는 고개를 낮추고 숨이 넘어갈 듯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왜 울어. 엄마. 왜 그래 하며 그의 옆으로 다가서도, 엄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엄마도 엄마, 엄마 하며 엄마를 불렀다.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떠나가라 엄마를 불렀다.
화장터 밖, 누나와 둘이 남겨진 나는, 할머니의 행방을 물었다. 누나는 밝은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외갓집에 계신다고. 전처럼 외갓집에 가면 또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남은 물음을 삼키며 그 대답에 얼굴을 묻었다.
어린 나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를 찾으면서도, 그걸 엄마한테 묻지는 않았다. 집안을 조용히 둘러보다 누나에게 할머니의 행방을 물으면, 누나는 잠시 어디 가신 거라고. 곧 오실 거라는 말을 했고, 나는 다시 엄마 옆을 맴돌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나는 천천히 할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였고,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2년 뒤, 엄마는 새로 태어난 사촌 동생에게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냐고. 너를 엄청 예뻐했을 텐데 하며. 동생은 이모의 젖을 힘차게 빨면서도, 엄마의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엄마도 오랫동안 눈을 맞췄다. 그러다 곧, 그래. 그래. 낮은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엄마의 가장 큰 기둥이었던 할머니는, 여전히 엄마 안에 남아있다. 이제는 가장 여린 구석으로, 금방이라도 가슴이 아릴 것만 같이. 할머니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