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건물들도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 굴착기가 돌아다니고 갖가지 공사 자재들이 이곳저곳 쌓여있을 무렵부터, 엄마와 아빠는 주말이면 이곳에 들렸다. 00년대 중순, 수도권 외곽 인천 끝자락에도 우후죽순 주거 신도시들이 들어서던 때였다. 그들은 주차할 곳도 마땅히 없어 흙바닥에 마련한 간이 주차장에 차를 두고, 시끄러운 건설 현장 주변을 맴돌았다. 공사판 외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그런 허허벌판을 거닐면서도, 엄마와 아빠는 한칸 한칸 올라서는 아파트 건물들을 보면서 미래를 꿈꿨다. 두 아이가 있다고 해도 아직 어린 30대 초의 부부에게, 아파트는 여태껏 가지지 못했던 가장 큰 자산이며, 그동안 고생의 결실이자, 새로운 다짐이 되었다. 처음으로 생긴 커다란 빚, 아직 어린아이들의 양육비와 학원비를 빼고 나서, 대출금과 자신들의 연봉을 비교하며 남은 30대 모두를 그 아파트 하나에 투자한 것이다. 한칸 한칸, 마침내 그들의 보금자리가 될 아파트 꼭대기 층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남은 시간도 여태껏 해온 것처럼 하나하나 쌓아갈 다짐을 하고 있었다. 기약 없는 내일을 걱정하며 평생 가난한 가정 속에서 살아온 두 아이가, 마침내 예고된 안정 속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일곱 살, 커다란 이삿짐센터 차와 함께 완성된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누나와 나는 20층 창문으로 올라가는 크레인을 살펴보며, 고개를 끝없이 뒤로 젖혔다. 여섯 식구가 만들어 온 그동안의 세간살이들, 기왕 이사하는 김에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낡은 가구들을 모두 버리고 온 터였음에도, 크레인은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엄마는 그런 우리들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놀이터로 데려갔다. 고작 일이 분 거리에 있는 놀이터, 아직 포장지조차 제대로 벗기지 않은 깨끗한 놀이기구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전 빌라 건너편 아파트의 놀이터보다 훨씬 깔끔하고 안전해 보였다. 탄탄한 고무바닥, 플라스틱 소재로 쿠션감이 있게 만들어진 그네, 비교적 낮은 미끄럼틀이 달려있긴 했지만, 청룡의 얼굴을 본뜬 모형을 뱃머리로 단 배 모양의 큰 놀이기구를 본 순간, 우리들은 밝은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놀이터로 달려갔다. 엄마도 웬일인지 우리와 함께 놀이기구 쪽으로 와서 이것저것 기구들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이전 오래된 놀이터와 달리, 모서리 또한 안전하게 둥글게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더니 흡족한 듯 웃었다. 나중에 이사한 후에 확인해 보니, 놀이터에는 cctv도 달려있는데, 그것을 집 tv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놀랐던 적도 있었다. 첫 며칠간 아파트 단지 안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매일매일 이삿짐 차가 오갔으며, 어느 오후에는 삐에로가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모양의 풍선을 만들어줬고, 또 저녁에는 야시장이 열려 길거리 음식들을 팔았다.
엄마 아빠의 휴가가 끝나는 마지막 밤, 우리는 자연스레 거실에 모여 앞으로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누나와 나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누나는 전학, 나는 새로운 유치원 입학, 둘 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누나와 나 모두 걱정보단 설렘이 가득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사를 와서 경험한 일은 전부 신나고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2005년,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설렘을 가지고 있었고, 앞날을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