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라고 해도 아마도 이쯤. 저녁때 퇴근한 엄마와 둘이 버스를 탔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깊은 밤. 근처에 있던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던 포장마차에서 왠지 모르게 호두과자를 샀다. 누나와 아빠 둘 다 온데간데 몰라도 혼자서 싱글벙글 오므려진 종이봉투를 열어젖혀, 그것을 조금씩 오물거리던 나. 창밖을 보다 문득 코를 훌쩍거리는 엄마에게 시선을 돌린다. 웃음도, 그렇다고 울음도 아닌, 출발 전 추위에 몸을 떠는 버스의 온정을 가득 감싸안아, 솜털같이 올라온 뜨개질 목도리에 푸근함과 노곤함을 묻고 알 수 없는 눈망울만 슴벅인다.
익숙한 듯 낯선 커다란 버스 안의 무거운 공기. 여직 회사를 떠나지 못한 남편과 이미 잠에 든 딸아이를 뒤로하고, 반기지도 않을 남은 아버지를 위해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던 엄마. 무료하게 엄마를 기다리다 똘망한 눈으로 같이 버스에 오른 내가, 종종거리며 먹을 걸 들고 올라, 그 좁은 좌석을 다 채우지도 못한 그 작은 형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려나. 우수에 가득 찬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조용히 웃었다. 외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우리를 감싸주던 그 따듯한 버스 안이. 엄마는 벌게진 코를 애써 젖혀올리며 어둑한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잠이 든 나를 깨워, 에일 듯 날을 세우는 새벽바람에, 막아줄 것 없는 차가운 배추밭 길을 걸어가다, 멀리 거뭇한 형체가 마중을 나온 것을 알았을 때, 서로를 알아보고서도 한참을 말없이 걷던 할아버지와 엄마. 그 긴 길을 걸었던 기억의 잔상이 더 뚜렷해질 리 없었건만, 할아버지는 정말로 그 멀고 추운 길을, 밤새도록 돌고 돌았음을, 이제와 다시 한 번 알아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