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 그러다 그냥 생각이 드는 대로 움직이며 사는 게 인간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상하고 고차원적인 말을 하며 그 가치를 높일 대로 높이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딱 이 정도의 말이 가장 단순화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성선설, 성악설을 말하며 인간의 본성을 논하기 전에, 경험 이전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 모두 무와 순수에 가깝다고 해도, 결국 인간의 가치관 안에서 그것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다는 전제가 놓여있다. 그러다 수없는 경험에 원초적인 감정과 표현에서 멀어진다고 하여도, 내면에서 순간적으로 발화된 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그렇다고 나를, 나의 행동을 감싸고자 함은 아니다. 도리어 잘못이라 여겨 더 파헤치고 들여다본다.
어리다는 말, 한창의 스무 살을 넘어서 지금까지도 언젠가 누구에게 들었던 말이면서, 결국 자신도 더 어린 과거의 행동에 쓸쓸한 변명처럼 덧붙여 어렵던 과거처럼 포장한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멀리해야 하는 말이라 다짐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순수가, 언제까지나 악의를 몰랐다는 말로 들려선 안 되니까. 과연 그때에도 정말 몰랐을까.
그 시절 뇌가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금처럼 수많은 속앓이에, 감정 출력에 많은 제한이 걸리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불안에 수많은 가정을 하지도 않았다. 드는 생각은 내뱉고 감정은 표출하고 좋은 건 계속한다. 그렇다면 좋은 건 뭘까. 바로 적절한 반응이었다. 나의 행동에─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든 옳은 행동이든─웃음을 더해주는 것. 그런 사람들이 얼마냐 있냐는 것.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아이가, 여러 번 쓴웃음을 짓거나 작은 반항을 하더라도, 옆에서 동조하며 웃어주던 아이들이 있는 한, 나의 장난과 괴롭힘은 계속됐다.
그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그저 뚱뚱한 외모를 말로 놀렸다. 가끔 울먹이는 표정에 지레 겁을 먹으며 사과를 하기도 하고, 그 아이가 맛있는 간식을 가져오거나 내가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을 때면, 또 상냥히 말을 건넸다. 그 아이는 선뜻 손을 내밀었다. 매번 놀림을 받으면서도 가끔 내가 선심 쓰듯 내뱉는 착한 말투에,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 아이가 학교가 오지 않은 날, 수업을 마치고 그의 엄마가 나를 몰래 불렀을 때, 나는 '네'란 말밖에 하지 못하면서도 억울함을 삼켰다. 나만 그런 게 아닌데, 매번 그런 게 아닌데, 그 아이를 때린 것도 아닌데. 그래도 사소했다. 엄마 뒤에 숨어있던 그 아이와 진심인지 모를 화해의 악수를 하고 나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그만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나름 친절히 말을 건네려 애쓰던 그 엄마의 표정이, 조금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그 아이는 또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미안하단 말을 담아두고 있던 나에게, 그의 엄마가 이번엔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너 전에도 그랬다며. 한 번만 그런 게 아니라며. 이제까지 계속 그랬던 거야? 학교에 가기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딸을 보며 분노를 계속 쌓아 올리던 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선생님은 우는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시켰다. 나는 그 말을 계속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 모두가 나를 지켜봤고, 오직 그 아이만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날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엄마가 선생님 면담에 한 번 불려 갔는데, 갔다 와서도 엄마는 나를 딱히 혼내진 않았다. 그저, 하나는 맞아서 불려 가고, 하나는 때려서 불려 가고, 라고 했다. 아마도 모두에게 죄인으로 교탁 옆에 섰던 순간이, 충분히 벌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실제로 벌이 됐는진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다. 그러다 여러 시점을 생각해 본다. 그럼 나는 주변 시선에 이끌려 그런 일을 한 것인가? 그럼 내 본성은? 관객이 없었다면 나는 그 아이를 놀리지 않았을까? 그 아이의 머릿속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언젠가 당하는 순간이 아니라 의도치 않아도 트라우마처럼 계속 떠오르는 기억에 의한 공포를 느끼면서, 학교에 있지 않아도 내일이면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생각해 본다. 그러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안쓰러운 표정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는 나를 벌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걸. 그저 놀림당하는 순간이 너무 힘들었을 뿐이라는 걸. 그에게도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상황이, 버거웠을 거라는 걸.
나는 여전히 나를 잘 모른다, 그때 당시 내 본성이 어떠했는지도. 그래서 어떤 가정을 해도 내가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매번 떠올려도 그 후의 그 친구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은 언제나 나를 향한 그 아이 엄마의 분노와 나의 억울함이었고, 그의 상황이 나아졌는지 어쨌는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졸업 앨범을 뒤져도, 전학을 갔는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그의 모습은 여전히 선명한데도.
그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왜 학교에 가기 싫었는지도, 어떻게 놀림을 당했는지도 전부. 작은 기억 파편조차 남아있지 않아, 언젠가 간신히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하는 정도로 어렴풋 했으면 좋겠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사소한 일처럼.
그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