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초등학교

by In l ll

출석 번호가 아닌 키 번호가 있던 시절, 12번인가, 하는 번호를 받았다. 복도에 성별로 두 줄로 나열해서 키를 재면서, 내 뒤에 고작 서너 명 정도의 아이밖에 없는 것이 나름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 줄 그대로 짝꿍이 된 여자아이와 손을 잡고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아직 이른 오전 시간, 아침 햇빛이 길게 손을 뻗어, 가운데 분단 뒤쪽 자리에도 새것 같은 책상이 나름 빛이 났다. 유치원 교실과는 사뭇 다른 교실 크기와 정면 시야에 들어오는 그늘진 초록 칠판은, 낯선 공간이라는 느낌에 더해 작은 설렘을 일게 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 고심해서 골라서 산 캐릭터 책가방을 열고, 엄마가 시간표에 맞춰 넣어준 교과서 몇 권과 알림장을 꺼냈다. 선생님은 학교가 처음인 우리에게 눈높이에 맞춰 상세하게 일과를 설명했다.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쉬는 시간은 몇 분인지, 점심시간에 밥은 어떻게 먹는지, 언제까지 학교에 와야 하는지 또 학교는 언제 끝나는지.

첫날, 나는 얇은 알림장 노트에 선생님의 말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받아적으면서도, 주변을 계속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새로운 장소, 사람들, 그래서 은은히 달라진 분위기와 공기가, 몸이 커지지 않았더라도 나름 인생의 새로운 한 계단에 올라선 느낌을 주었다. 유치원생이 아닌 초등학생. 초등 일 학년. 더 이상 일방적 보살핌에 대상이 아닌 배움의 단계에 들어선 학생이라고. 나는 학교라는 정해진 울타리가 생각보다 맘에 들었고, 학생이라는 역할에도 마음이 동했다. 정작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나이가 같은 아이들 모두가 한곳에 모여 같은 수업을 듣고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설렘이 가득했다. 짜인 일과가 비슷하면서도 매번 달랐고, 그게 내일을 기대하게 했으니까. 세세한 것에 신경 쓰지 않던, 그러한 성격이었던─어쩌면 그 정도가 내 인지의 테두리였던─ 여덟 살. 12번에 잘난체해도 아직 커다랗기만 한 책가방을 메고 다니며, 한 손으로 실내화 주머니를 끌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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