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의 기억이 들어선 건, 아마도 이쯤. 이때가 첫 만남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전부터 연을 이어온 것처럼 꽤 오래 붙어 다녔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집이 가까웠던 걸로 기억하고, 같은 반이었던 것과, 여러 번 짝꿍을 했던 게 크지 않았을까. 3학년 때 전학을 가버려 이젠 그의 모습이 뚜렷이 그려지지는 않지만, 중단발 정도의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귀염상의 얼굴이었던 거 같다. 그는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많았고, 웃음이 많았으며, 가끔 모질게 굴던 나라도 자주 챙겨주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기, 한살 한살이 크던 시기에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성숙도는 많이 달랐다. 표현이 서툴고 거칠던 나는, 남자아이는 물론 여자아이와도 자주 치고받고 싸우곤 했는데, 특히 그 아이와 자주 그랬다. 둘은 교탁에 매번 불려 나갔고, 교실 한쪽 구석에서 벌을 받았으며, 또 그러면서도 자주 붙어 다니며 싸웠다. 싸움이 원래 그렇듯이 시작은 다 별거 아닌 일. 그러나 그 미묘한 균열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되고, 그것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행동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에 나에게는 그런 그의 상처조차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서, 그 아이의 마음을 한 번도 달래주지 않았다. 겉으론 거칠어도 사실 물렁했던, 주황빛 속살의 홍시와 같은 내 마음이, 그 아이의 붉어진 눈가를 볼 때마다 자주 불안한 듯 터져 나와, 그 아이를 감싸줄 수도, 그렇다고 밀어낼 수도 없었다. 후회할 거야. 너 진짜 후회할 거야, 라는 그 아이의 최선을 다한 원망의 말이 쏟아져나왔을 때, 먼저 돌아서려 했던 고개가 어느새 그 아이를 잡고 있는 내 손에 가 있었다.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 전과 비슷하겠지, 하면서도 내가 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나, 내가 잘못되고 있나 하는 불안에, 끊어질 듯 위태로운 인연의 끝자락에도 손 한 번 내밀지 않다가, 뒤늦게 양손이 쓸리듯 끊어진 인연에 온 힘을 다해 애를 썼다. 그건 성공이었을까. 그렇게 다시 이어졌을까. 그렇게 쉽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 한 번의 애타는 손짓에, 그 관계는, 돌아섰을까.
자주 가던 친구의 집. 둘이, 또는 다른 아이도 같이 하던 하굣길. 손 마디마디에 남은 주름에도 무엇이 달라진 줄 몰라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내 관심의 신경다발은 넓지만 얕았고, 어느새 그 아이와 있는 것이 안정감이 들기 시작할 때, 그 아이가 나를 유하게 대하며, 더 이상 내 앞에서 우는 모습도 보이지 않을 때, 그 아이는 전학을 갔다. 기억에 없는 짧은 몇 마디를 나누고, 아마도 잘 가와 같은 말을, 아이들이 함께 있는 무리에서.
하굣길. 매번 같이했던 건 아니지만, 같이 발견했던 짧은 지름길을 이젠 혼자 걸으며, 어느샌가 도착한 친구의 집 공동 현관문 앞에서, 익숙한 비밀번호를 누를까 하다, 그 앞 계단에 쭈그리고 잠시 앉았다. 집 전화를 쓰던 시절, 이사한 집의 번호조차 물어보지 않았단 걸 그제야 깨닫고서, 처음으로 내가 그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쌓으며, 그 긴 시간을 혼자 쭈그리고 앉아, 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며, 아쉬웠던 말을 하나씩 쌓고 있었다.
둘이 홍시를 먹은 적이 있다. 오전에 수업이 끝나고 친구의 집에 가면, 그의 부모님은 항상 안 계셨다. 보통은 나 외에 다른 친구들이 함께, 그러다 가끔, 겹치는 하굣길에 나 혼자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아이는 높아 보이는 개수대에서 얼굴만 한 홍시 두 개를 씻어,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것 하나를 내 앞에 건네주었다, 나는 받은 숟가락으로 봉오리처럼 올라온 뒷부분을 푹푹 파먹었는데,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그 아이는 조용히 손을 뻗어 남은 껍질을 살살 벗겨주었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그 작은 손을 따라, 뒷면이 비칠듯한 얇은 비닐 껍질이 벗겨지자, 먹음직한 주황빛 속살이 드러났다. 여린 몸집에도 아직 뚜렷이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그 부들부들한 덩어리를, 나는 그 아이처럼 천천히 떠먹었다. 홍시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 온전한 속살이 하나씩 내 안에 들어오는 것 같은, 그런 몽글몽글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났다. 나는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고맙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가끔 홍시를 먹을 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 집 앞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처럼, 살살 홍시 껍질을 벗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