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외가 친척 중 막내였던 내 밑으로 동생이 하나 생겼다. 나를 귀여워해 주던 셋째, 막내 이모가 하나둘 결혼을 하고, 그중 셋째 이모가 낳은 아이였다. 아이를 낳았단 말에 병원으로 향했을 때, 우리는 아이보다 먼저 이모를 찾았다. 처음 이모의 모습을 봤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이모는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퉁퉁 온몸이 부어올라 그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린 나조차도 놀란 기색을 보였는데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두 동생의 혼주석에 앉았던 엄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누나와 함께 담담한 표정의 엄마를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 후 대략 1년.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 이곳저곳 수술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생을 봤을 때, 그는 어떤 얼굴을 내비쳐 보였을까. 누구의 마음도 깊게 헤아리지 못하던 나는, 낯선 이모에게 조금 떨어져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대화가 끝나고 이모부와 함께 아이를 보러 갔다.
아이 또한 벌겋게 달아오른 몸뚱어리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한 듯 보는 아버지와 누나. 그 사이 유리창 너머로 빼꼼 고개를 올려 아이의 여러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던 나는, 곧 흥미를 잃고 조금 물러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아이는 왜 태어나는 것이냐고.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 지도, 또 그 아이가 어떤 식으로 뱃속에서 자라고 성장하며 세상을 맞이하는지도 몰랐던 시절, 낯설게 변한 이모와 그 이모가 낳은 아이를 보자, 시간이 지나 누군가 자라고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자라 아이를 낳는, 어쩌면 앞으로도 무한히 반복될 그런 순환의 고리에 경계가 일었다. 언젠가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이 땅에 떨어져 얽매일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래서 모든 게 의미 없고 허무해졌을 때처럼, 멀리하고픈 현실이 다가오자 곧 아이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오랜 시간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또 알아듣지도 못할 고갯짓을 자기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는 엄마와 이모부를 보았을 때, 나는 다시 그들 옆에 서서 그 아이를 바라봤다. 듬성듬성 올라온 실핏줄 하나에 이제껏 헤엄쳤던 수많은 몸부림이 모두 담겨있는 것처럼, 조용히 웅크린 그 작은 그 형체에, 세상에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이 모두 응축되어 있었다. 그래, 하며 나도 어느 순간 그들의 운명적 만남과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해줄 말을 골랐다. 결국 모든 게 만남이고 경험이라 그것의 무한한 가치를 언젠가 내가 깨닫길 바라며, 나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모네 아이로, 이 넓은 우주 속에서 우리를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