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다 문득 느낀 건데, 난 그렇게 좋은 아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몰랐던 것처럼, 다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이 어느새 잠식되어, 누군가의 말 같이 가해자는 기억 못 한다고. 그렇게 보면 미약하지만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인 건가. 이렇게 자기 고백처럼 타자를 치는 순간에 망설임이라도 일게 하니 말이다. 완전히 솔직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고 싶지는 않다. 잘못된 진실이 언제나 내 편에만 서 있는 건 아니니까. 아, 지금 말하는 일이 거짓이란 건 아니다. 글로 쓰는 순간에도 본론을 두고 맴돌 만큼 불편한 걸 보면, 그 순간이 많이 부끄럽다는 거니까.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스스로가 주인공이라고 믿었던 삶에는, 눈에 띄는 사람 말고는 대부분이 조연이었다.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그랬을 테지만, 어린 시절에 어설퍼 보이는 아이는 더 많았을 테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연세가 있으신 분이 담임을 맡았다. 아이들에게 엄했지만, 그렇다고 손을 올리시던 분은 아니었다. 이때의 우리들은 매우 작았으니까. 물론 선생님이 손을 올릴 만큼의 일을 벌이는 아이도 없었다. 무서운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작아지던 내가, 결국 이 선생님의 첫 손찌검 대상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때는 학기 초, 1학년 때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 건지, 교탁 앞에서 질질 눈물을 흘리고 나서도 끝내 못돼먹은 천성을 버리지 못했다. 새롭게 놀림에 대상이 된 아이는 남자애였다. 순하고, 잘 웃고, 가끔 콧물을 조금씩 큼큼거렸다. 그게 다였다. 이 아이를 왜 놀리게 됐는지, 왜 그걸 그만두지 못했는지, 그 후에 그 아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 모두 잘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는 나의 지속된 놀림 끝에 큰 울음을 터트렸고, 곧 교실에 들어와 다른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이 나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면서 주먹으로 머리통을 세게 쥐어박았다는 것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일이 정말 부끄러운 일로 기억된 건, 중학교 때 이 친구와 다시 같은 반이 되고 나서였다. 한창 사춘기가 왔는지 날카로운 모습에 주변 친구들이 조금씩 질려하고, 하나둘 없어지던 친구들에, 결국 학교를 멀리하던 순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삶과 학교 모두에 부적응을 겪고 있을 때, 그 친구는 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 중심에서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들던 그의 모습이, 어린 시절 어리숙하던 모습을 전혀 담고 있지 못했다. 이전일을 기억할까, 생각에 애써 그를 멀리했다. 하지만 같은 반이라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 종종 찾아왔고, 그때마다 나는 그를 온전히 대하지 못했다. 그건 그를 괴롭혔다는 죄책감 때문도, 그를 향한 미안함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나를 대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조연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쌓인 감정이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듯, 마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먹은 듯, 나를 대했다. 나는 매번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고, 그도 그걸 인식했는지 우린 매번 긴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낮은 자존감의 끝을 달리던 그때, 나는 그가 나를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모두 탐탁지 않아 하는, 어느새 조퇴를 해있거나, 애초에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 한 번 겉돌게 되면 나중에는 적응이 더 어렵단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어느샌가 많이 달라져 버린 그와 나의 입장에, 나는 결국 그의 조연이 돼버린 거라고. 갇힌 세계 속에서 막연히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었다. 결국 졸업하는 날까지,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조연이 됐다는 생각은 그저 내 생각을 그에게 투사한 것에 불과했다. 언젠가 스무 살 가까이, 생각을 재우는 방법을 배우고 이런 일의 마지막 생각이 '중요하지 않다'가 되었을 때, 그의 생각을 짐작해 보는 게 이젠 나에게 필요치 않다고 결론지었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 우리는 서로의 등장인물조차 되지 못했다. 나 혼자 가끔 뭣 모를 고통에 혼자 발목을 잡고 깽깽이를 하고 있던 것과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제야 그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였다. 그와 나는 묶어서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못돼먹은 초등학생 하나만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생각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하고.
내가 부끄러웠던 건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