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넘다 발을 잘못 짚었다. 입술을 다쳤다. 얼마나 찢어진 건지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것이 앞을 가렸다. 도로가 보이는 골목 바닥, 나물을 팔던 할머니가 울고 있는 나에게 물어 우리 할머니를 불러주었다. 못해도 20분 정도. 그 할머니는 떠나가라 우는 나를 부축해 옆에 앉히더니, 조용히 또 나물을 파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흘긋흘긋 쳐다봤다. 오래 울면 배고프다고 했던가. 피가 뚝뚝 흘러도 눈물은 천천히 멎었다. 같은 반 친구가 엄마와 지나갔다. 걱정하는 듯한 한마디에, 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사이 우리 할머니가 왔다. 아픔, 서러움, 이젠 배고픔까지.
병원에서 내 얼굴에 하얀 천을 씌웠는데, 실루엣으로도 날카로운 무언가가 입술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툭, 툭 두 번의 바느질이 내 살갗을 뚫고 지나갔다. 퉁퉁 부어오른 아랫입술에 바느질 자국이 얼핏 보였다.
할머니는 그 후로 나물을 샀다. 씻어놓은 나물이 냉장고에 조금씩 쌓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물을 샀다. 매번 달라지는 나물 파는 할머니들. 나는 나를 도와준 할머니가 누군지 몰랐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내 고개는 자연스레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인적한 골목 바닥에 검게 변한 핏자국이 매번 그곳에 있었다. 훗날 성인이 되고 그 동네를 떠날 때쯤, 나는 할머니 없이도 혼자 나물을 샀다. 이젠 어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자국을 찾다가 슬그머니 그때 그 자리에 앉아보았다. 할머니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셨지만, 곧 다시 나물을 파셨다. 사람들이 슥슥 지나갔다. 대부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느려지는 걸음보다 빨라지는 걸음이 더 많이 보였다. 그렇게 조용히 5분 정도를 앉아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도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이 조금 쌀쌀했다. 나물이 봉지 안에서 바스락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