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선풍기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완전한 여름 가까이, 집안으로 흘러들어오던 소금바람이 옷가에 메여있던 시절이 있었다. 나무에 맺힌 물방울 사이로 경계선 없는 파란 우주가 펼쳐졌고, 구불구불 골목진 그 시골마을 사이로 코끝 찡한 바다내음이 흘렀다.
어린 소녀는 뜨거워진 모래사장을 가르며 오고 가는 바람을 흔들었고, 무거워진 바람길을 따라 불그스름해진 바닷가 위에 투명한 얼굴 비추곤 했다.
이내 어두워진 밤길 사이로 어린 손녀를 마중 나온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마주 잡고서, 비릿한 생선냄새를 감싸 안은 할머니를 마중 나간다.
희미한 달빛 사이로 짧은 물자국이 이어지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낡은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그렇게 수많은 파도가 흘렀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다 식지 않은 열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더 작은 발자국들이, 어린 소녀가 다 채우지 못했던 넓은 도화지에 가득했다. 두 볼 가득, 불그스름한 열기를 머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