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는 '성실한 사진가'를 만든다
나는 똥손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폰 카메라로 수십장의 사진을 찍어도 건질 사진은 몇 개 안된다. 그나마 대부분의 멋진 사진(?)이라고 생각되는 사진은 유명 사진 어플이 만든 인위적인 '갬성' 사진이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사양과 가격은 점점 높아지는데, 내 촬영 실력은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 남자친구의 소개로 20세기에 탄생한 필름카메라를 만났다. 오직 찍고 현상할 수 있는 단순 기능만 가진 카메라. 유한한 필름사정으로 찍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진 카메라. 사진을 찍고 싶은 대상과의 거리를 생각해 거리비를 맞춰야 하는 카메라. 여러모로 제한이 많은 카메라였지만, 그 '제한'이 나로 하여금 사진 찍을 때는 사진에만 초집중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용량이 풍족한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하며 각도와 거리에 상관없이 한 번에 수십장을 찍는 것에 거리낌 없었던 나의 방종(?)을 제어해주었기 때문이다.
비싼 필름 값은 나를 성실한 사진가로 만든다.
비싼 필름을 마구 사용하는 것이 아까워 중복 사진은 왠만하면 잘 찍지 않게 되었다. 촬영횟수도 정해져 있는 만큼 재미있고 아름다운 장면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 속 모든 shot은 점차 서로 다른 멋진 shot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믿었다. 사실 믿을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는 정말로 필름 카메라의 사진은 현상하기 전까지 내가 잘 찍었는지 못 찍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필름 카메라의 매력인 듯 싶다. 사진을 현상하기 전까지 두근두근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 (즉각적인 사진 확인과 delete 모두 가능한 아이폰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현상된 사진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감동했다. 아이폰은 live photo 기능을 통해 조금은 인위적으로 사진의 순간적 이야기(instant story)를 담는다면, 필름 카메라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긴 이야기(long story)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특히 인물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필름카메라는 모든 사진 속 인물을 '사연있어 보이는 여자' 혹은 '사연있어 보이는 남자'로 만든다. 왜 그런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필름카메라의 인물 사진에서는 사진 속 모든 배경이 그 인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시선은 인물로 집중되고, 그 인물이 갖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인물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진 한 장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무궁무진하다.
20세기 필름카메라는 21세기 아이폰 카메라가 흉내낼 수 없는 차별화된 힘을 갖고 있다. 어떤 단 한 장의 사진이라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이 힘은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누구나 쉽게 필름 카메라로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멋진 사진들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멋진 사진들이 모여 또 우리 삶의 긴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려준다.
처음 소유한 카메라가 핸드폰 카메라였던 90년대생 초보 사진가. 20세기 필름 카메라를 만나 즐거운 상상력을 뽐내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내는 ‘멋진 사진가'로 성장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