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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Mar 24. 2019

택시 미터기

  택시 미터기는 쉼 없이 돌아갔다. 도빈의 심장소리도 가파라졌다. 0에서 9를 찍고 다시 0을 찾아가는 숫자 속에서 도빈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뜨거운 히터 바람 탓인지 눈앞이 아득했고, 머리를 휘저어가며 기억을 더듬어갔다. 수하와는 7년 하고도 8개월만의 재회였다. 바쁘게 돌오가는 택시 미터기처럼 두 사람의 나이도 스물 일곱에서 멈춰있지 않았다. 미터기는 거리에 비례했다. 도빈과 수하의 나이도 흘러간 시간 만큼 숫자로 옮겨졌다.


  "아버님은?" 수하와 다시 마주한 도빈의 첫 인사였다. 어떻게 지냈는지나 근황 따위는 묻지 않았다. 서로를 연결하는 끈은 상투적인 인삿말 뿐이었다. 도빈은 적절한 인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후회했지만, 수하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수하는 오른발만 천천히 앞뒤로 움직여 시멘트 바닥에 굴러다니는 모래알만 쓸어댔다.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대답은 없었다.


 도빈은 서툴렀다. 진심이 보여질까 언제나 조바심이 났다.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것이 도빈의 '천성'이라고 했다. 수하는 그런 도빈이 싫지 않았다. 몇 번의 인사밖에 나누지 않았던 도빈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수하는 도빈과 연인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수하는 도빈과 만날 때마다 그의 가려진 진심에 닿길 원했다. 하지만 도빈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하는 지쳤고, 도빈은 조바심이 났다.


 "이제 그만하자." 도빈에게 연인으로서 마지막으로 건넨 수하의 마지막 인사였다.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겼던 수하는 그렇게 도빈에게 이별을 말했다. 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긴 연애의 마침표는 간결했다. 


 멀끔한 이별은 아니었다. 도빈은 덤덤하게 하나의 수업이 끝나는 듯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가, 1년, 3년…시간이 켜켜이 쌓일수록 수빈의 마음에 선명하게 다가갔다. 서툰 만남과 어울리는 어설픈 이별 방법이었다.


 책의 한 페이지가 지나가고 색이 바랜 것처럼 수하에게는 추억보단 기억으로 남은 도빈이었다. 도빈의 연락에 대수롭지 않게 응했고, 두 사람은 마주보고 있다. 이별의 그날에서 달력의 숫자는 성큼 달려왔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건 수하의 아버지를 근황을 묻는 정도였다.


  도빈은 수하와 몇 마디를 나눴다. 그게 전부였다. 요동치는 심장과 달리 입은 그저 뻔한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을 뿐이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순간이 덧없이 지나갔다. 택시 미터기에 찍히는 숫자처럼 무의미한 인사도, 대화도 아닌 말이 오고갔다. 도빈은 이번이 수하와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다시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 두렵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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