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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Dec 23. 2022

N잡러로 살아간다는 것

세상엔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글 쓰는 일이 좋아 언론사 시험을 전전하다가 덜컥 합격하게 된 작은 언론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운 좋게도, 나름 열심히 한 덕분에 다른 언론사들로 이직을 하다가 기획사 언론홍보팀 일까지 했다. 그리고 2년 6개월 전에 사표를 내고 처음으로 무직 상태가 됐다.


 기자, 홍보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모든 일이 즐겁진 않았으나 내게는 잘 맞는 옷이라고 느꼈다. 이제 와서 퇴사한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너무 갇혀있는 일만 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만큼 무슨 일이든 하면 굶지는 않겠다는, 맨몸으로 세상에 부딪혀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퇴직 후 처음 3개월 동안에는 여러 구상을 해봤다. 대신 기자, 언론홍보 일만은 제외했다. 누구보다 그 일을 잘할 자신은 있지만 고되 보여도 다른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당시에 눈에 들어왔던 건 온라인 판매였다. 한창 유행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물건을 떼어와서 판매하려고 했으나 경쟁이 너무 심해 보였다.


 인테리어 조명을 온라인 판매 아이템으로 잡았다. 고객들의 주문에 따라 별도 제작하는 조명이었다. 퇴직 후 간판일을 하시는 부모님의 가게에 자주 가다 보니 조명에도 관심이 생겨서였다. 종로 조명거리 곳곳을 뒤지고, 부자재를 판매하는 도매상을 직접 찾아가면서 조명을 제작했다. 퇴직하던 그 해 추석 전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 사이트에서만 1200개 리뷰가 달릴 정도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에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명을 제작하는 일이 점차 손에 익었다. 간단한 도안도 제작해야 했기에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배웠다. 태어나서 디자인 프로그램을 만질 일이 없었을 것 같았는데 생존 본능이 발휘됐다. 직장을 나온 후 시작한 일은 현재의 첫 직업이 됐다.


 예상보다 조명 판매가 잘 된 이후로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의 연락을 받게 됐다. 작은 기획사들 홍보 대행사를 하고 있는데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퇴직한 후에 몇몇 회사에서도 입사 제의를 받긴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그럼에도 선배와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그만큼 서로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홍보 일을 주력으로 할 수는 없었다. 감사하게도 선배도 양해를 해줬다. 바쁠 때만 홍보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처음 1년 동안에는 들어오는 일만큼 보수를 받다가 올해 초부터는 직원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 선배는 내가 사무실 출퇴근 없이 기존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하도록 배려한 덕분에 두 번째 직업이 됐다.


 그 사이에는 무인카페 창업도 했다. 온라인 판매, 언론 홍보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안전판 하나를 마련해 두고, 오프라인 매장 경험도 하고 싶었다. 1년 반 동안 이래저래 모은 돈과 사업자 대출을 일으켜서 무인카페를 열었다. 카페 기기 공장 견학을 했고, 직접 이전 매장 철거를 했다. 인테리어 과정을 하나하나 경험하기도 했다. 추후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무인카페 사장은 그렇게 세 번째 직업이 됐다.


 커피 매출이 줄어두는 겨울로 접어들던 때, 싼 상가 월세를 찾아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내측 상가에 자리를 잡아서인지 첫 4개월 매출은 기대보다 낮았다. 1년이 지난 현재는 처음보단 일매출이 2배로 늘었다. 워낙 초반 매출이 낮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고생한 만큼 결과가 났다.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이웃 가게 사장님들을 보고 배우면서 느끼는 점도 많았다. 매장을 갈 때마다 손님을 응대하는 경험을 많이 쌓으려고 했다. 무인매장이라고 하더라도 주인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손님의 방문 횟수는 크게 차이가 난다.


 지난 시간 동안 세 가지 일을 쉴 틈 없이 일했다. 주말에도 푹 마음 놓고 쉬진 못했고, 밀린 일을 몰아서 한 때도 있었다. 작은 사업을 하는 분이라도 그 안에는 치열한 일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매일 깨달았다. 세상에는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고,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배우고,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올가을부터 벌려놓은 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일에 정작 내가 쫓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구멍 난 일들을 메꾸는데 하루를 들려 보내는 상황이 돼버렸다. 결국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그 일로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는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 점 또한 배운 것 중에 하나다.


 N잡러로 살아가던 중에 전 직장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큰 규모의 회사로 다시 들어오라는 제의였다.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선배도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고민한 끝에 일단 입사 제의는 수락했다. 회사 생활을 다시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지금 벌려놓은 일들이 막막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하는 선택이 추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도 고민됐다.


 N잡러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추후에 함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다. 어디에나 기회는 있고, 미래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N잡러로서 경험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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