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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Jul 03. 2019

"다시 한번 찍을게요, 미소 지으세요"

운전면허시험장에서의 단상  

 해외에서 렌터카를 빌리기 위한 준비물 중에 하나는 국제면허증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사진과 여권 그리고 면허증만 있으면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곳은 운전면허시험장이었다. 2년 전에 면허증 재발급을 하려고 찾았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조금 더해진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곧바로 서류에 필요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지하 1층에 있는 즉석 사진기 부스로 이동했다. 부스에 들어가자 담당자는 "앞에 있는 화면을 보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직 얼굴 근육이 풀리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 담당자는 "다시 한번 찍을게요. 입가에 미소 지으세요"라고 말했다. 짤막한 기계음이 난 뒤 사진은 인화됐다.


 "9000원입니다. 카드 결제도 돼요." 촬영부터 계산까지 담당자의 절차 속에는 빈틈이 없었다. 복잡한 절차들이 단 번에 스쳐 지나가듯이 진행됐다. 지갑 속에 만 원짜리 지폐가 있는 걸 봤지만, 습관처럼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담당자가 계산을 할 때 이제 막 스무 살로 보이는 청년이 사진기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계산을 하면서 한 묶음으로 인화된 내 사진을 8장씩으로 대강 오려내던 담당자는 "앞에 있는 화면을 보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 모습이 찍힌 사진에 있었다. 사진 촬영 기계음이 끝나자 "다시 한번 찍을게요. 입가에 미소 지으세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여전히 담당자의 시선은 내 사진에 머물러있었다.


 사진을 받고서는 국제면허증 창구로 향했다. 몇 년 전에 온 곳이어서 그런지 헤맬 필요도 없었다. 난생처음 발급받는 국제면허증도 면허증 재발급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사진을 촬영한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다' '창구로 간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행정 절차다. 굳이 안내하는 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됐다.


 창구 앞 테이블에서 여권에 적힌 영어 이름, 주소 등을 서류에 기입한 후 번호표를 뽑았다. 앞선 대기자는 5명이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시간이어서 예상보다 대기 인원이 많았다. 바로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을 줄 알았는데, 운전면허시험장이다 보니 민원실이 있는 경찰서보다 신청자가 더 많았다.


 무더위가 막 시작되는 날씨 탓인지 운전면허시험장 안에도 은근한 열기가 돌았다. 제조 공장에서 볼 법한 대형 선풍기가 바쁘게 움직이며 공간의 뜨거운 기운을 식히고 있었다. 각종 행정 업무를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은 의자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각 부스는 초록색으로 구분됐다. 여기에 노란색 간판들이 행정 업무 영역을 표시했다. 초록색 노란색은 도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색깔이다. 초록색은 적색과 대비해 '안전'을 뜻하고, 두 색깔의 사이인 노란색은 가장 눈에 잘 띄면서 '주의'라는 의미가 있다. 초록색과 노란색은 운전면허시험장과 꽤나 잘 어울렸다.


 직원들은 순서에 따라 대기자 번호를 불렀다. 사람들은 각자 부스로 이동해 업무를 봤다. 신규 면허증을 발급하는 부스에서는 번호가 아닌 면허증에 적힌 이름을 불렀다. 적당히 높은 톤과 리드미컬한 목소리에 일정한 운율이 담겼다. 면허증을 발급하는 직원들과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정갈했다. 사전에 동의한 듯 최소의 동작으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고 있었다.


 잠시 후 내 번호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창구로 갔다. 준비된 간단한 서류, 사진, 여권, 면허증을 제출했다. "국제면허증과 여권 영문 이름이 같은지 확인" "만기는 오늘 기준으로 1년"이라는 담당자의 말을 들었다. 그의 시선은 컴퓨터 모니터에 있었다. 모든 절차를 끝내자 국제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운전면허시험장의 업무는 성능 좋은 엔진이 굴러가는 것처럼 무서울만치 군더더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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