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는 없다…인생의 길 모퉁이 뒤에 숨어있는 것들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탈 때면 그제야 퇴근 시간을 실감한다. 아침에 축 처졌던 어깨는 그나마 펴진 상태지만 1시간 반에 이르는 퇴근길을 생각하면 다시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숨 한번 들이쉬고 지하철에 오르면 출근길보다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몸을 옮길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또 다른 여정이 남아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5분을 다시 들어가야 집이 나오는 코스다. 그나마 다른 지하철역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라 다행이다. 해가 지는 저녁 시간에 나름의 운치를 느끼며 작은 골목길을 통해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이 길에는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 구간이 있다. 양쪽에 대형 사우나 건물과 일직선의 주차장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하는 모퉁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잠시 구석진 자리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기에도 적당하다.
가끔가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에 문뜩 알지 못하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한다. '모퉁이를 돌다가 갑자기 자동차가 튀어나온다면' '급히 뛰어가는 사람과 부딪히진 않을까'…. 열 번을 걸으면, 두세 번씩은 모퉁이를 돌 때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걱정들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때면 발걸음은 느려지고, 눈은 주변을 살피게 된다.
우리는 하루하루 길 모퉁이를 돌고 있을지 모른다. 퇴근길처럼 몇 백번이고 반복했던 익숙한 길이지만, 앞에 있는 모퉁이를 지나면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부터 시작해 가족, 친구들과 갑자기 다투거나 마음이 상할 수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나 모퉁이 뒤에 숨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퉁이 길을 마주할 일도 조금씩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길 앞에서 발걸음이 멈칫거리는 듯 무엇을 결정하거나 낯선 일들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결국에는 이전보다 안정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안정적인 직장, 배우자를 찾는 것도 같은 이치다.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최대한 곧게 뻗어있는 길을 선호한다.
완벽한 하루는 없다. 세상은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아가지 않기보단 어떻게든 걸음을 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길 앞에서 잠시 멈칫하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길을 돌아야 비로소 현실과 마주할 수 있다. 그 현실이 잔혹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