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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Jul 15. 2019

밥이 끈기가 없네

각자의 다른 인생 온도, 익는 시간도 다르지 않을까

'밥이 끈기가 없네'

 고깃집에서 밥을 시켰다. 흩날리는 밥알을 보신 어머니의 말이다. 끈기. 사전엔 '물건의 끈끈한 기운'이라 적혀있다. 하지만 사람에도 해당하는 말일 테다. 어머니께선 끈기가 없는 이유가 '뜸이 덜 들어서'라고 하셨다. 청춘. '만물의 푸른 봄철'이란 뜻이고 '인생의 젊은 나이'란 뜻이다. 그리고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를 걸친 기간을 말한다. 졸업을 앞둔 지금, 뜸 들이는 시기라 생각한다. 조급해 뜸 들이지 않으면 삶이 흩날리고, 너무 여유를 부려도 인생이 질어지니 문제다. 조급해하지 말자. 흩날리는 인생을 사느니, 다 태워먹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가끔 설익은 삶을 사는 지인들의 조롱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까끌거리고 흩어져 맛이 없다. 한마디로 밥맛 없다.




 8년 전 동네 고깃집에서 밥을 먹다가 '끈기'에 관해 글을 적었다. 한창 페이스북을 하던 때라 짧게 생각을 옮겼다. 지난 주말 고깃집에서 부모님과 저녁을 먹을 때 은빛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보자 불현듯 글이 다시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취업준비생 시절이 아닐까 싶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 있었고, 스스로에게는 더 불확실했던 때였다. 매번 깨지고 엎어지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밥이 끈기가 없다'라며 호기롭게 썼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딱 그 호기에 비례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어머니가 밥과 관련해 하신 말씀은 없다. 그저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 속에서 연신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숯불을 향한 불만뿐이셨고, 나 또한 그랬다. 환기가 되지 않아 모든 문을 열어놓은 고깃집에서 올여름 더위를 대비해 설치했다는 에어컨은 별 기능을 하지 못했다. 밥이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더위가 우리 가족의 끈기를 시험했다.


 어느덧 회사에서 직책도 있는 30대 중반이 됐다. 지금의 나는 뜸이 잘든 어른이 된 것일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할 테지만, 이전보다 '청춘'을 앞에 내세울 수는 없는 나이다. 그동안 처음의 마음가짐처럼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어떤 일이든 했다. 반면 그 사이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졌고, 진심으로 가족들을 챙기지 못했다. 과도하게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뛰어다녔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8년 전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흩날리는 인생도 괜찮은 인생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온힘을 다해 뛰는 것만큼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할 수 있는 순간들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무작정 달리는 것 외에도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뜸을 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오래 뜸만 들일 수도 있지만, '각자 인생의 온도는 다를 테니 익는 시간도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 속에서 오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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