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삶을 너무 가볍게 보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소식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평범하기만 했던 지난 14일 오후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속보가 인터넷 뉴스를 뒤덮었다. 카톡 메신저에서 친구들은 속보 기사를 퍼나르며 "이거 맞아?"라고 물었다. 다른 메신저 방에서는 "오보겠지"라는 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믿고 싶지 않았던 소식은 사실이 됐다. 스물다섯. 인생이 채 만개하기도 전에 져버린 나이였다.
설리의 소식은 나에게는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지난 몇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중문화 가요 분야를 담당했다. 최근에는 연예 기획사에서 근무 중이다. 설리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하지만 대중으로서 그의 데뷔를 봤고 기자로서 가수 활동을 다뤘으며 기획사 관계자로서 비보를 접했다.
그의 죽음 이후에는 인터넷에서 '악플러가 잘못했다' '방송이 잘못했다' '기자들이 잘못했다' 등의 공방이 벌어졌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며칠이 지나고 나면 이 일도 관심에서 멀어져만 갈 테다. 타인은 물론 자신의 아픔을 계속 간직한다면 앞으로 살아가지 못할 테니 이 또한 당연하긴 하다.
조명이 가득한 무대, 멋들어진 영화 속 주인공 등…연예인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화려하기만 하다. 영상 매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친숙할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우연히 연예인을 봤을 때 싸인을 요청하거나 반가워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작 연예인 본인은 난생처음 본 타인과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웃어야 한다. 대중은 연예인이 갖춰야 할 당연한 자세라고 여긴다.
연예인도 누구나 그렇듯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도, 풍파에 쉽게 꺾일 수도 있는 한 사람이다. 기자 생활을 하며 가수, 배우들과 인터뷰할 때면 그들은 언제나 웃음을 머금고 맞아줬다. 겉보기에 힘든 내색을 찾기 어려웠다. 기획사 스태프가 되어 옆에서 지켜보니 그게 얼마나 쉽지 않았을지 이해됐다. 인기 연예인들은 활동할 때면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한다. 틈틈이 여기저기에서 오는 요청을 받고 해내야 한다. 주변의 수많은 스태프가 있지만 결국엔 연예인이 모든 걸 해야 한다. 스태프는 옆에서 도울뿐이다.
연예인에게 팬과 대중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들이 있기에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잣대를 마냥 들이미는 것은 옳지 못하다. 브래지어를 차든 말든 그의 생활양식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단지 '연예인'이라는 표적에 화풀이를 한다거나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꼴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연예인들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존재라면,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존재라면 그 책임은 다해야 한다. 하지만 연예인의 생활 방식이나 일상을 향해 무분별하게 쏘아대는 타인의 화살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 범주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기자 생활을 할 때는 그 위치에 취해 나름의 기준을 들이밀기도 했던 듯하다. 기자의 삶도 참 서글프다. '대중문화'는 너무 광범위한 것인데 그 안에는 사람, 작품과 더불어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터진 둑을 가까스로 손으로 막다가도 다른 일이 생기면 황급히 발로 막아대는 현실이다. 데스크의 끝없는 요구를 받아내기도 버겁다. 정신없이 뉴스를 따라가다 보면 벌써 해가 떨어진 뒤다.
일부가 내뱉는 부정적 여론에 언론들이 끌려다니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고 현상을 바라봐야 하지만, 그런 기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월급쟁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언론사도 기업인 탓에 위의 상사와 회사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가야 한다. 그곳에 내 삶이 옳매여 있다.
설리의 소식을 듣고 참 미안했다.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위치라서가 아니다. 다른 이들과 말할 때 그의 삶을 가볍게 얘기한 적이 있었던 건 아닌지, 기자로서 최대한 다양한 측면에서 그를 바라봤는지, 기획사 관계자로서 연예인의 슬픈 뒷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인지…. 아무리 돌아봐도 나 또한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