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 먼저 들어볼래요?
<내 꿈은 웅변학원 원장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들이 물어봤던 질문 중 혹시 기억나는 질문이 있으실까요?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저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신 후 친구들의 대답은 다양했습니다. 선생님이 된다는 친구 경찰관 의사 대통령 판사. 다양한 직업군들이 나왔었고 왜 하고 싶은지 까닭을 들어 말했던 친구들의 모습은 늠름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친구들의 발표가 끝이 나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갔고 당차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다음에 커서 웅변학원 원장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웅성거렸습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웅변이란 단어는 처음 듣는 단어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에는 선생님도 의아해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이들은 웅변이 뭐냐고 물었었고 변자가 들어간다고 똥이냐고 물어보는 아이로 웃음바다가 됐었으니까요.
2024년 43살인 저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리 친구들이 웃었어도 저는 아주 진지하게 제 꿈을 발표, 아니 선포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7살 때로 기억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성남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성아웅변학원’이라고 성남 시청 근처였을 겁니다. 그때 저는 유치원이 아닌 학원을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유치원 과정을 배웠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어머니는 “학원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 원장님이라고 불러야 돼!” 홍길동도 아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원장님! 안녕하세요!”라고 더 큰 소리로 인사했어야 했습니다. 티 내는 걸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우리 아빠가 원장님이야!”라고 말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아빠한테 다가가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님 실을 창문 너머로 봤는데 그 창문 너머 아버지는 커다란 책상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하얀 A4용지 위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원고를 쓰고 있었습니다. 담배 연기가 매웠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저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창문 너머로 본 아버지의 그 순간이 마치 사진처럼 박제가 되었고 그 모습에 반한 저는 “나도 저렇게 멋지게 원고 쓰는 웅변학원 원장님이 돼야지”라는 생각이 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이 순간이 저에게 생기고 난 후부터 “니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숨도 쉬지 않고 “웅변학원 원장이 될 겁니다.”라고 당차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기본기를 닦은 시간>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6월이면 항상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한 웅변대회가 단체들마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단체들은 학교로 공문을 보냈었고 대회에 참여할 학생들을 연습시켰습니다. 웅변학원 원장의 꿈을 늘 말하고 다니고 보호자 직업란에 웅변학원원장이라고 쓰인 저는 이런 대회가 있을 때마다 뽑혀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대회를 나가기 위해서는 원고가 필요하고 웅변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톤으로 외워서 발표해야 합니다. 그때는 웅변학원들이 많이 있었던 때라 참여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다음 웅변학원 원장을 할 몸인 저인지라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원고를 쓰고 고치고 본건 있어서 잘못 쓴 원고지를 구겨 던지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불 킥 할 일들을 그땐 너무 멋있었다 생각하며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웅변학원 원장님이셨던 제 아버지는 저에게 원고 한번 써주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은 같은 대회에 참가했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제 아버지께 원고도 받고 레슨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대회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심 나도 나가니까 학원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알려주지 않으실까 원고라도 써주지 않으실까 기대해 보았지만 기대가 컸던 것일까요 레슨은커녕 원고도 써주지 않으시고 심지어 써놓은 원고도 봐주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대회에 왜 나가느냐고 구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어린 나이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딸이었는데 제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전 진심 아버지께 서운하기도 하고 그때부터 아버지한테 마음을 닫았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지금도 아버지랑의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제 남편이 왜 아버님이랑 사이가 좋지 않냐고 물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한 자 한 자 적다 보니 그때 들었던 서운함이 사작이었네요. 이제야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버지께 대회 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서 원고 쓰고 연습해서 대회 나갔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일등상을 받은 적도 있고 꼴찌상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중 기억나는 대회가 있는데 꼴찌상 받았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무척 덥기도 하고 사춘기가 왔었는지 그냥 화가 많았던 5학년 때였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서 웅변발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마음의 소리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였습니다. 갑자기 나온 마음의 소리는 마음에 그치지 않고 제 발표에 묻어 나왔던 모양입니다. 그날 발표는 망쳤고 꼴찌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는 정말 발표를 해야 할 때가 있으면 이 생각을 하지 못하게 준비를 더 잘했습니다. 마음에서 생각한 건 나의 태도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걸 그때 깨달았거든요.
어렸을 때 대회 나가면서 준비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 사간이 저에겐 기본기를 닦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생각합니다. 연단을 맞이하는 자세 원고를 준비하는 방법 발표할 때의 성량과 발음 전달력 무대 위에서 떨리는 두 다리 등등 대회를 참여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저는 꼴찌도 해보고 일등도 해봤습니다. 처음과 끝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강점을 살려 쭉 써 내려가보고자 합니다.
음.. 2024년 저는 현재 21년 차 스피치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10년의 기본기를 닦고 21년 차 강사로 생활하고 있는 저의 이야기라면
스피치라는 기술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강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