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한 자들의 승자 선언

지위로 선택된 전문직, 적성으로 선택된 전문직

by INA

한국 사회에는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검사, 판사, 그리고 ‘힘든 시험’이라 불리는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들 중 일부가 보여주는 하대하는 태도다.
문제는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단순히 권위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현상이 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산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몇 년씩 고립을 견디고, 삶을 뒤로 밀어둔 채 시험 하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후,
마침내 합격하면, 그것은 ‘능력의 증명’이라기보다 승자 선언에 가깝다.
‘나는 해냈다’가 아니라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다’라는 인식이 약하게든 강하게든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중요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적성은 여기다’가 아니라
‘이걸 따면 남들보다 나아 보인다’
‘이걸 따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인식으로 뛰어든다.


그러니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인내와 억압의 시간이다.
원치 않는 길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온 이들에게, 합격증은 단순한 자격이 아니라 삶 전체를 정당화해 줄 보상이 된다.
그리고 그 보상이 결국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언행, 불필요한 위압, 설명할 수 없는 오만과 하대는
결국 ‘내가 겪은 고통만큼 너희가 나를 대접해야 한다’는 뒤틀린 심리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반면 서양의 법조인은 조금 다른 궤적을 가진다.
그곳에서 변호사와 판사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이며,
시험 합격은 신분 상승의 티켓이 아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경력을 쌓고, 시민의 평가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구조다.
‘오랜 고통의 대가로 얻은 지위’가 아니기에,
그 지위를 방패 삼아 타인을 깎아내리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물론, 서양에도 오만한 엘리트는 있다.
그러나 그 오만은 개인의 성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보상 심리의 집단적 산물은 아니다.


한국에서 시험 합격이 주는 의미는 독특하다.
그것은 능력의 지표라기보다
지위의 증명이며,
우월함의 기호이자,
견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무언의 외침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그들이 그 길을 정말 좋아해서 선택했다면,
그들의 언행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전문성을 쌓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과,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억지로 버틴 길은
결국 전혀 다른 품성을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행위와 인격의 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