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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 Nov 08. 2021

나는야 주입식 역사교육의 피해자

사유로 발견하는 역사의 의미와 나

누군가에게 역사는 딱딱하고 듣기 싫은 이름이다. 이들은 필히 학창 시절에 역사를 공부하고 연도를 외우는 것에 꽤나 피해(?) 봤던 것이리라.


그러나 누군가에게 역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을 홧홧하게 만든다. 누구 말마따나 “여까지 왔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는, 절로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역사 이야기만 들으면 눈가가 촉촉해지던 나였으니까. 4 동안 학과 공부를 하던 때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역사를 공부하면서 무척 행복했으니까.  


이런 나에게 “역사를 알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나?”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 행복했는지 생각해보면, 그때는 역사를 말하면서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내가 FM으로 사건 배경-과정-의의-영향을 설명해주면, 이를 듣는 상대방이 “너 참 설명 잘한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라고 칭찬을 해줬기 때문이다. 사실 칭찬이 좀 고팠던 것 같기도 하다. 흠.


그런데 지금의 나는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나는 역사적 지식은 있지만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역사적 사건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고, 그것으로 누군가의 역사의식을 깨워주고 일으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 역사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으면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 역사를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의 괴리. 역사를 통해 뭘 말해야 할지, 뭘 알아야 할지도 모르는, 뇌가 투명한 상태.


아. 나는 역사를 주입식 교육으로 받았지. 그래서 앵무새처럼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이 없구나. 나는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 있는 게 아니었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100점 맞았던 나는, 그렇게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그런데..


역사에 관한 사유의 한 부분은 역사가 무엇 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하는 것
(역사, 존 H 아널드)


이 말에 나의 상황을 적용해본다면, 나는 역사 지식만 알고 있는 인간일 뿐, 역사를 사유하는 인간은 아닌 거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역사를 곱씹고 생각하며 ‘왜?’라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었을까. 그저 외우는 데 급급 했겠지. 그러나 위의 말처럼 주입식으로 역사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존재 이유를 ‘나’라는 인간에 적용했다면 어떨까? 수많은 이들이 역사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존재 목적과 연결 지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역사를 지식이 아닌 지혜라는 유산으로 축적했겠지.


여하튼 이렇게 나의 밑바닥을 보니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사유하고 재해석하여 의미를 발견하고 싶다.   의미를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필요하다면 논쟁도 해보고, 깨져보고, 배워보고, 설득하고 싶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곳에 글을 올려보고자 한다. 훗날 내가 어떻게 되어있을진 모르겠지만, 부디  조심스런 발걸음이 그저   떼고 끝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단순히 돈만 벌다 가는 인생으로 치부하기엔 나와 여러분은 너무 아까운 존재이기에, 역사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부여된 존재 의미를 연결하고 함께 발견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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