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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공원 Dec 19. 2019

눈 쌓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상상해 본 적 있나요?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에 방문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까사 바트요. 그라시아 거리 43번지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건축물. 1877년 에밀리오 살라 코르테스(안토니 가우디의 건축한 스승 중 한 분)가 지은 건물을 당시 카탈루냐 부르주아였던  조셉 바트요 Josep Batlló y Casanovas가 1903년에 매입하면서 ‘바트요의 집 casa batlló’이 되었다. 


1877년의 그라시아 거리. 멀리 가우디의 손길이 닿기 전 카사 바트요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출처 : www.casabatllo.es


당시 섬유 업계에 종사하면서 바르셀로나에 여러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저명한 사업가 조셉 바트요. 그가 당시 촉망받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에게 카사 바트요 건설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위임하면서 지금의 카사 바트요가 탄생한다. 


카사 바트요 외경


버튼만 누르면 입에서 줄줄줄 가우디와 그의 작품들 얘기에 흥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옛말인가. 요즘은 어제저녁에 뭘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팩트체크가 업이었던 과거의 내가 무관하게, 사람들 앞에서 침 튀기며 수다 떨던 이야기 중엔 조금 덧붙여지거나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을 것이다. (반성합니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만난 까사 바트요의 외경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가장 유명한 스폿은 ‘빛의 파티오'다. 


빛의 파티오 속 파란색 타일들.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색조가 점점 밝아진다.  동일한 논리로 창의 크기도 점점 커진다.


스페인 사람들은 건축물 내부에 자연광이 고루 닿을 수 있도록 중정(patio)을 설치했는데, 까사 바트요의 중정은 특히나 더 아름답고 실용적이기로 유명하다.  안토니 가우디는 자연광이 건물의 모든 방에 도달할 수 있도록 '빛의 파티오'를 확장시켰고, 층마다 빛을 균일하게 분산시키기 위해서 서로 다른 색조를 가진 파란색 타일을 사용했다. 



카사 바트요 내부에 들어서자, 황홀한 풍경이 시야를 압도한다. 



요즘 빛의 파티오. 눈이 온다. 


너무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내린 눈이 창틀 군데군데 소복이 쌓여있다. 검지로 살짝 쓸어서 만져본다. '종이 눈'이었다. 사실 이 이벤트는 몇 년 전부터  까사바트요가 진행하는 겨울 이벤트인데, 반가운 마음에 하마터면 살짝 울 뻔했다. 


 '아... 눈이구나. 가만, 나 눈 내리는 거 얼마 만에 보지?' 


바르셀로나에도 눈이 올까?
 Nevará en Barcelona? 

    


바르셀로나 생활 6년 차. 이곳에 살면서 눈 오는 풍경을 딱 한 번 만났다. 


작년 1월이었나. MWC 시즌이었고, 잠깐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나는 브레이크 타임에 마땅히 쉴 곳을 못 찾고 헤매다 Fira Gran Via 허허벌판에서 혼자 싸라기눈을 맞았다. (신세 한탄하느라 사진도 없음) 


옷에 닿으면 바로 스르르 녹아버리는 싸라기눈이 뭐가 좋다고 바르셀로나 친구들은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며 기뻐 날뛰었다. 바르셀로나는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눈'은 곧 '대서특필 감'이라고 했다.  



눈 쌓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를 
상상해 본 적 있나요?"


고작 눈 오는 게 대서특필 감이라고? 하루에도 수십여 건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터지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런데 호기심에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사진들을 몇 장 발견했다.  



1900년대 이후 바르셀로나에도 대폭설이 몇 번 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기는  2010년 3월 8일. 기사 내용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지역에 기념비적인 폭설이 내렸다. 그로 인해 바르셀로나 시내는 격리되었고, 잘못 설계된 고전압 타워가 붕괴되면서 거의 50만 명의 시민들에게 전력이 공급되지 않아 큰 혼란을 낳았다.  공항이 마비되어 수천 명의 여행자들은 발이 묶인 채 밤을 새워야만 했다. 카탈루냐 정부는 전기회사 엔데사 Endesa에게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묻고 870,000유로(한화로 약 11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전기 요금이 비싼 건가.


왼) 눈 내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La Sagrada Familia (2010) 사진 출처 :https://www.elperiodico.com/es / 오) 당시 현지 신문기


카탈루냐 및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하는 현지 신문사 '라 반과르디아 La Vanguardia'를 보다가 'Nevadas que han hecho historia en Barcelona'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직역해 보자면 '바르셀로나에서 역사를 만든 눈'.  눈이 오면 바르셀로나의 역사가 된다. 눈이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만든다. 


거꾸로 보고 뒤집어 봐도 바르셀로나와 눈은 남의 옷 얻어 입은 내 신세처럼 영 어색할 줄 알았는데, 사진으로 남아있는 수십 년 전 대폭설의 현장은 너무나 근사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눈 오면 생고생인 거 뻔히 알면서. 멀리서 보면 다 낭만이랄까.


눈싸움하는 바르셀로나 청춘들 (1948) / 카탈루냐 광장에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두 남자 (1962)
눈 쌓인 람블라스 거리의 꽃집 (1962)  / 눈 쌓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인 (1962)
왼) 48년 만에 내린 대폭설, 사그라다 파밀리아 (2010) / 오) 눈 쌓인 성당 앞에서 노는 아이들이 천진하다 (1962)  
왼)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티비다보. 겨울에 종종 눈이 내린다. / 오) 눈 쌓인 거리를 조심조심 걷는 두 할머니. 바닥이 미끄러워 보인다.


왼) 눈 오는 바르셀로나 거리, 우산 쓴 두 여인 (1933) / 오) 눈싸움하는 아이들, 멀리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이 보인다 (2010)


사진 출처 : https://www.lavanguardia.com/reportajes-fotograficos/20101103/54063869093/nevadas-que-han-hecho-historia-en-barcelona.html#9




'바르셀로나에도 눈이 올까요?' 


'네, 옵니다. 아주 가끔. 때론, 아주 많-이.' 





* 바르셀로나 눈 역사와 관련된 사진들의 출처와 저작권 모두는 각 해당 신문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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