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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공원 Dec 19. 2019

바르셀로나에서 집주인이 되려면

 이 집에 이사 온 지 꼭 1년 반이 되었다. 걸어서 5분이면 지중해 바다가 보이고, 시장은 2분 거리, 그 옆엔 바르셀로나에서 손꼽히는 동네 빵집이 있다.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도 이 정도면 가깝고, 마음만 먹으면 타라고나 tarragona, 시체스 sitges, 근교 어디든 한 번에 갈 수 있는 근사한 기차역도 코앞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장점을 글로 쓰고 있자니, 내가 이 집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끔 '우리 이사 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적어도 50-60년은 되어 보이는 이 건물엔 그 흔한 엘리베이터가 없다. 우리는 3층에 사는데, 스페인 건물엔 '0층' 개념이 있어서 4층에 가깝다. 아니 (체감상 5층 같은) 4층이다. 한 번 시장에 가면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오던 버릇도 이 집에 오고 나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8L짜리 생수통은 늘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 몫. (고마워) 오늘 먹을 것만 간단히. 내일의 양식은 내일 또 사자. 어차피 시장이 2분 거리인걸.  


동네 시장 옆 광장. 늘 평화롭다.

서울살이 시절, 처음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 가던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다음 달 30일이 되어도 통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잔액을 보면서 '오늘 저녁은 치킨 두 마리다!'하고 생각했다. 서울 생활 7년 만에 월세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아버렸다. 



바르셀로나에 와 보니,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아주 기이하고 독특한 렌트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큰돈을 집주인한테 맡기고 산다고? 왜?" 

"월세로 나가는 돈을 줄일 수 있으니까. 한국에선 결혼할 때 집을 사는 경우도 많아."

"한국 사람들 다 부자야? ㅎㅎ" 

"보통은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갚아 나가는 거지. 

내 집을 갖는 게 평생 꿈인 사람들도 있거든." 



아무도 집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는 도시. 평생 월세를 내는 게 당연한, 그래서 '내 집을 사야 한다'라는 강박과 스트레스의 영역에 진입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난과 절약이 살가죽처럼 몸에 밴 나의 친구들. 겉으로는 저렇게  얘기해도 어떻게 평생 내 집을 갖고 싶지 않을 수 있겠어? 도대체 바르셀로나에서 집 있는 사람들은 다 어디 숨은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집 계약하는 날,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난 집주인은 나이 지긋하신 까딸란 노부부였다.  우리가 계약서를 확인하는 동안, 여든이 넘은 집주인 할아버지는 모로코에 호텔이 하나 있는데, 올여름은 거기서 보낼 예정이라며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둥 쉰 소리를 하고 계셨다.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옆에서 말없이 듣고만 있던 단정한 인상의 집주인 할머니가 처음으로 조용히 입을 여신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랑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라 겉은 좀 낡았는데... 

그래도 내부는 깨끗하게 리모델링해뒀으니, 잘 써줘요."



집은 사는 게 아니라 물려받는 거구나. 계약서를 챙겨 나서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까사 바트요의 집주인은 바트요 씨다. 



사실 이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바르셀로나 집주인들의 이름을 듣게 된다. 주요 관광지인 까사 밀라 Casa Mila와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의 작품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이 건축물들은 모두 1900년대 초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살았던 집이다. 스페인어로 'Casa'는 '집'이라는 뜻이고, 'Casa' 뒤에 붙는 고유명사는 대부분 집주인 이름이다. 그러니까 '까사 바트요'는 '바트요 씨네 집', '까사 밀라'는 '밀라 씨네 집'이 된다. 


까사 바트요 외경(파사드) / 사진 출처 : http://casabatllo.es
까사 밀라 Casa Mila 전경. 사진 출처 : https://www.lapedrera.com/es


까사 밀라와 까사 바트요가 세워진 그라시아 거리는 1900년대 초, 산업혁명 이후 큰 부를 축적한 카탈루냐 부르주아들이 모여 살던 신시가지였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값비싼 명품숍들을  둘러보기 위해  그라시아 거리로 몰려들었고, 잘 나가는 기업가들은 이 '핫 플레이스'에 자신들의 집을 짓고 싶어 했다.  


섬유 사업가였던 조셉 바트요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바르셀로나에 여러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그라시아 거리 가장 중심에 있는 건물을 510,000 페세타(유로 이전 스페인 화폐 단위)에 매입하고, 당시 가장 잘 나가던 52세의 가우디를 까사 바트요 프로젝트 총책임자로 위임한다.  현재 까사 바트요에 남아있는 엘리베이터는 그때 당시 가우디가 혁신적으로 공들여 설계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집착하는 나란 사람,,)


바트요 씨네 가족. 사진 출처 : https://www.casabatllo.es


까사 밀라 주인들은 또 어떻고? 투우장 기업가, 변호사, 정치인 등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부와 명예를 두루 얻으며 소위 성공한 남자의 인생을 살았던 남편 페레 밀라 Pere Milà. 카탈루냐의 대표 부르주아였던 사업가 가문의 딸로 태어난 로세르 세지몬 Roser Segimon. 부유한 가문의 인도인과 첫 결혼 후, 미망인이 된 로세르는 1905년,  페레 밀라를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한다. 그라시아 거리의 화려함에 반한 밀라 부부는 1,835 평방미터의  거대한 땅을 구입하고, 가우디에게 까사밀라 신축을 의뢰한다. 로세르 부인에겐 전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어마어마한 유산이 있었고, 부부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그 누구의 집보다 크고, 화려하고, 빛나는 집을 갖고 싶었다. 찐(부자)이 나타난 것이다. 


까사 밀라의 집주인, 페레 밀라와 로세르 부부. 1947년,  부인 로세르가 이 집을 매각하면서 건물의 이름도 '라 페드레라'로 바뀌었다. www.lapedrera.com/es
까사밀라. 옆 건물들에 비해 3-4배는 부지가 넓어 보인다. 사진 출처 : https://www.lapedrera.com/es


 까사 바트요 옆에 '까사 아마뜨예르 Casa Amatller ', 그 옆 옆 옆에 있는 '까사 예오 이 모레라 Casa lleo i Morera' 역시 당시 부르주아들이 살던 초호화 집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부를 타고나거나, 3대째 이어 내려오는 초콜릿 공장을 물려받거나, 전 남편에게 유산을 상속받거나, 심지어 아버지가 삼촌한테 물려받은 건물을 다시 상속받았거나(예오 이 모레라 Lleo i Morera가 건물주가 된 계기) 하는 '대운'들이 본인의 인생 위에 툭- 얹히면서 집주인 혹은 건물주가 되었다. 


평생 자신의 이름이 건물 벽에 새겨진 집에 사는 인생이란 어떤 기분일까?  고작 몇 십만 원을 다달이 내지 않아도 되는 기분을 처음으로 알아버렸을 때의 나는 아마 상상도 못 하는 영역의 세계겠지. 부럽지만, 부럽지 않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요즘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acia.  사진출처 : https://www.casabatllo.es



바르셀로나에서 집주인이 되려면,



바르셀로나 집 값이 엄청 뛰었다. 1년 만에 무려 16.9% 뛰었다는 기사도 보았다. 


숙박 영업을 위해 아파트를 사거나 렌트하려는 사람들이 바르셀로나 시내로 몰려들면서,  현지 원주민들은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근교로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가고 있다. 아예 고향으로 짐을 싸서 돌아가는 친구들 소식도 종종 들린다.  'go home, tourist!'를 외치는 과격한 현지인들의 속 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바르셀로나에서 집주인이 되려면... 아니다. 아마, 다시 태어나도 힘들 것이다. 



해변과 태양 말고는 모든 것이 멀게 느껴지는 이 곳에서,

나는 꼬장꼬장한 집주인 할머니가 되지 않고도, 

노년의 가난에 허덕이지 않으면서, 

강아지와 산책 나가는 귀여운 할머니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바르셀로네타 해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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