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남은에어팟 Oct 07. 2019

1월엔 폰을 정지하고
그해 8월엔 레이저폰을 샀다.

첫사랑은원래부끄러운거야2

나는 단언컨대 지금의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이렇게 공부를 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엔 피쳐폰 시절이었다. 휴대폰 가운데에는 magic N 이라던지 그런 종류의 버튼이 하나씩 있었고 그 버튼을 실수라도 누르면 종료 버튼을 연타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핸드폰이 손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쥐고 사는데, 막상 지금생각하면 할 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고3이 되는 겨울, 정확히 고3 1월에 나는 대리점에 가서 휴대폰을 해지했다. 부모님에게 알리거나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무작정 해지하고 이제는 공부에 집중하겠노라 나름의 큰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당시 사귀던 한살 어린 여자친구는 우리집 소화전에 문제집을 넣어주고 이별을 통보했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하던 친구 였는데, 무려 압구정으로 학원을 다니셨다. 특별히 학원을 다니지 않던 나는 시간이 남아서 그 어린 여자친구가 학원에 오고가는걸 바래다 주고 데리러 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며 그녀는 고1이었는데, 고3에 한발자국 더 가까운 건 정작 나였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참고로 고1때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SKY를 제외한 상위 10개 in서울'이면 족했다. 그러다가 고2가 되면서 경희대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고3이 되어서야 연대에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바라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쨋든 여자친구, 휴대폰과 담쌓고 지내는 8개월을 보내고 고3 8월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당시 합격발표가 난다고 했었는데 pc방에 가서 확인하자고 친구들과 우르르 pc 방에 갔고, 접속 폭주로 사이트가 마비된 걸 확인하자마자 득달같이 친구들과 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친구에게 내 합격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고(앞서 말했듯이 핸드폰이 없어서 급한 연락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오곤 했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합격증이 테이블에 올라와있었다. 엄마 아빠는 그간 핸드폰도 스스로 끊고 공부한게 대견했는지, 당장 내일 핸드폰을 사러가자고 하셨고 엄청 좋아하셨다. 그냥 나는 얼떨떨 했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샀던 당대 최고 비싼 핸드폰은 모토로라에서 나온 레이저 폰이었다. 당시 갤럭시, 아이폰 같은 브랜딩이 되어 있지 않았고 휴대폰이 나올때마다 그 특징을 살려서 애칭이 생기거나 이름을 붙이곤 했는데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폴더 폰인데 엄청 얇았다. 주머니에 넣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얇았던게 기억난다. 화면 터치가 아닌 버튼이 달린 폴더 폰은 오래 쓰다보면 버튼이 닳고 헤지다가 결국 눌리지 않는다. 결국 그 핸드폰도 그렇게 사라졌던 것 같다.


핸드폰을 사서 개통하자마자 수많은 연락을 받았고 이전에 사귀던 여자친구부터 친구네 부모님까지 연락을 그렇게 하셨더랬다. 사실 그 때 온 축하 연락보다 더 인상적인건, 합격후 학교에 갔을때였다. 나보다 평소에 공부를 더 잘한다는 소위 모범생 친구들이 인사도 안하고 쉬는시간, 점심시간에도 엄청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씁쓸했다. 나는 그들이 싫지 않았으나 나에게 생긴 좋은일이 모두에게 좋은일이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무언가 개인의 개성보다는 공동체 속의 일원으로서의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참고로 그들과의 추억은 좀 더 있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끼리 답을 맞춰보며 최상위권 친구들은 서로의 답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때 내가 적은 답을 말하면  '어 그래 잘했어' 라고 말하고는 웃고 넘기던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생각나는 걸 보니 그 논쟁에 끼워주지도 않던 그 친구들의 말투와 눈빛이 나름의 상처가 됬나보다.)


그때 합격자의 신분으로 학교에 가는 날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책 한권 덜렁들고 학교에 갔었는데 뒤에서 책을 읽는데 너무 시간이 안가서 지우개나 뜯고 있었던게 기억난다.  수능날 신체 사이클을 맞춘다고  낮에는 잠을 절대 자지 않았는데, 그 결과 잠도 오지 않았었다. 생각보다 허무하고 지루하게 막을 내린 초, 중, 고의 마지막 학기였다.


그 이후로 학교에 2번만 더 가고 고등학교 시절은 끝이 났는데, 아이들 수험표 도장찍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교무실에 한번 갔으며 학기가 끝나는 날즈음에 한번 더 갔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이제는 고등학교에서 멀리 떠났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고려대학교, 아니 적어도 여긴 아니다. 차라리 하다못해 수시 합격생들이 모여 만든 싸이월드 클럽,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msn메신저가 더 중요하고 재미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비젼과 목표의 중요성을 토로하곤 한다. 그렇지만, 과정의 아름다움이나 설사 달성치 못하더라도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는 하루하루가 가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 목적지향적 삶은 목표를 이루고 나면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누구는 허무해하고 누구는 헤메고 누군가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전까지 어쩔 줄 몰라한다. 어쨋든 대학만이 목표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대학을 붙었으니 이제는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더라.




연애하는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등장 인물의 이름만 가명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05년 여름, 고려대학교에 합격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