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전교 1등을 하진 못해도 어느과목하나 빠지지 않았고, 고등학교 3년간 모두 90점을 넘어서 올 A마크를 달고 졸업했으니 꽤나 성실 했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고3 8월, 덜컥 수시에 합격해버려서 고려대학교에 미리 입학할수 있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에 합격했으니 나는 더이상 여한이 없었다. 서울대는 진즉 포기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에서도 분위기 망치니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게 되어 말그대로 합법적인 백수가 되었다. 엄마가 집에서 하루종일 자고 있어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는 고3이 되버린 것이다. 밤새 게임을 해도 엄마는 과일을 깍아다 주셨다. 열심히 밤새 하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게임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여기저기서 많은 축하와 연락을 받았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을 정도로, 매번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엄청 길다. 그걸 학교를 안 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여전히 생체시계는 아침이면 일어나게 되어있는데, 하루가 길고 길었다. 그때 처음 느낀게, 오전 10시의 세상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오전 10시에 집에서 나와 밖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른들은 직장에,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 있기에 한적한 거리를 독차지 할 수 있었다. 고3인 친구들은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한창 풀고 있을테니, 나는 그저 걸어다녔다. 오전을 내 마음대로 쓴다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유치원때부터 나의 오전은 항상 무언가로 채워져있어서 등떠밀렸으니까.
다행히도 대학교에서 이런 각 고등학생 한량들에게 대학교를 미리 탐방시켜주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곳에 참가하게 되었다. 같은과 동기, 그리고 타과생들 까지 하면 꽤나 많은 친구들이 서로를 알게 되었다.
무슨이야기를 해도 즐거웠다. 거기엔 세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 집근처를 벗어난적 없는 나에게 다른 곳에서 입학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두번째, 모두가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고3에서 해방 되었다는 생각과 그간 공부한 것을 보상받는다는 생각에 이미 애초에 행복감이 꽉찬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즐겁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중 남고를 나온 나에게 '여자 사람 친구'라는 존재가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다들 고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해서 못생긴 친구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각 고등학교에서 전교권이던 공부쟁이들이 모여있으니, 예쁘고 멋있기 힘들었다. 그래도 한껏 멋을 부리고 다녔었는데, 어린 나이에서 오는 생기발랄한 예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매일 만나고 매일매일 모여서 떠들었으며 집에 가서도 메신저에 매달려서 매일매일 MSN을 했다. 버디버디 이후에 좀 논다는 친구들은, msn메신저를 통해서 친구들과 이야기 하곤 했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던거 같은데, 어쨋든 그때 혼자 모니터 보고 낄낄거리던 생각은 선명하다. 앞으로 뭐가 될지도 모르고 뭘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신나고 즐거웠던 것 같다.
2006년의 인터넷은 사실 싸이월드와 동음이의어 였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각종 포탈의 군웅할거 시대였으며 새로운 시도들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당시 인터넷에서 net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회사는 모두 주가가 미친듯이 올랐을정도로 인터넷이 활짝 개화하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이때야 말로 '으른'들과 아이들의 인터넷 사용률이 극단적으로 갈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50~60대 어른들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시는분들이 많은데 그때는 오로지 젊은 층의 놀이터였다.
지금 19년을 주름잡는 네이버는 이런 존재감을 가지지 못했으며(그땐 없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오히려 라이코스나 야후 같은 회사들이 좀더 점유율이 높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라이코스도 사라지고 야후 코리아도 사라져버렸지만 말이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는 프리첼에서 싸이월드로 넘어가는 시절이었는데 프리첼의 경우 몇몇의 친구들이 모여서 까페 같은 페이지를 운영했다면 개개인의 공간이 존재하는 싸이월드로의 전환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메신저 부문에선 카톡이 생겨나려면 아직 한참 남은이야기고 버디버디의 위세를 여러군데에서 갉아먹기 시작한걸로 기억하는데 다음에서 운영하는 메신저와 여전히 어린층에서 강세인 버디버디, 그리고 네이트온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외국 회사인 msn메신저를 쓰는 친구들도 많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다르게 msn을 통해서 수시 합격생들끼리 이야기하곤 했다. 사실 중학교때 msn아이디를 만들고 쓰지 않았었는데 대학생들 다 쓰니까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인상깊게 본 만화책 '짱'의 주인공인 현상태를 찬양하는 아이디를 공개할 수 밖에 없었고 꽤나 오랜 놀림거리가 되었었다. 그땐 왜 아이디에 zzang을 붙이는게 유행이었을까. 후회해도 그때의 나는 저랬으니 어쩔 수없지. 여담이지만 짱은 결국 내가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완결을 봤으며 현상태는 경찰이 되었다고 한다.
어쨋든, msn의 인상적인 기능중에 자리를 비우면 비운다고 표시가 떳으며, 한줄로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는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게 가능했다. 그런 중2병 스러운 행동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의 우리는 잘해야 20살, 대부분은 19살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이상한걸 인지하긴 했던 것 같고 담백한 친구들은 별말 쓰지 않고 마침표만 적었던 것 같다. 다만 나만 어떻게든 한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