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 남매 하나, 커밍아웃이 문제가 아니라
키워봤으니 낳아도 보자
출산 전 삼 개월 전부터 조산사(midwife)를 찾아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자연출산을 위해 호흡법 등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산모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 살. 마흔이 2년 남은 시점이 예정일. 그동안 마흔이 되면 임신 확률이 50%로 떨어진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계속 들어왔다. 출산 예정 날짜를 받으니 데드라인에 너무 가깝지 않게 과제를 제출한 것처럼 안전하고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첫아이를 길러낸 경험이 있는 나에게 없는 것은 출산경험뿐이었지만 한번 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 심하면 진통제를 쓸 수도 있고 하루이틀 정도에(근데 이제 죽기 직전의 고통을 동반한) 끝날 수 있으니까. 진통을 열두 시간 해도 일단 낳기만 하면 회복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아기의 면역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자연분만을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을 선택했다.
부작용은 실명
임산부 동료들과 잠깐 만나 네트워킹을 하며 두 달 여가 지났을까. 다들 마지막 달을 앞두고 골반이 열려 걸음이 뒤뚱거린다는 대화를 나누며 차례로 혈압을 체크했다. 평소에도 오류가 잦던 자동 혈압계가 또 고장이 났는지 내 차례가 되자 너무 높은 혈압을 보이고 있었다. 담당 간호사인 안젤라가 한숨을 쉬며 내쪽으로 다가와 수동으로 혈압을 쟀다. 푸쉬푸쉬- 하는 소리가 커지고 팔이 점점 조였다 천천히 풀렸다. 안젤라는 혈압계의 숫자를 쳐다보며 “Oh, really?” 하더니 몇 차례 다시 혈압을 쟀다. 혈압계 고장이 아니었다. 다음 날 나는 임신성 고혈압 판정을 받았다. 내가 고장 난 거였다! 맛있는 걸 좋아해 마른 몸을 가져본 적 없는 나였지만 고혈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가 단지 임신 때문에 고혈압이라니! 게다가 일분이라도 빨리 아기를 빼내지 않으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검색결과를 보고 불안이 엄습했다. 그동안의 자연분만 교육이 무색해졌지만 유도분만 대신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아기의 성장만큼 느린 회복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르르)
커밍아웃이 문제가 아니여
“언니 나도 아기 가질까?”
“아니, 하지 마”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능력 있는 주변 지인들(동생들이라고 하자)이 종종 물어오곤 할 때마다 한동안(약 5년 동안) 내 대답은 같았다. “하지 마.” 아이를 키우기 전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이 95% 정도라면 아이를 갖고 난 후에는 5% 정도로 줄어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상에 압도되어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은 고민으로 분류하기에도 민망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갖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던 것도 키우는 일 자체가 큰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아이를 갖고 나서야 비로소 절감한 결과였다. 그리고 하나를 낳고 키우다가 살만해지면 하나를 더 낳고 싶은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도 난감했다. 안되면 아쉽고, 되면 힘든 임신과 출산은 그 기쁨만큼 묘하고 곤란한 일이다. 이 모두 우리가 성 정체성만 남다를 뿐 평범하게 진화한 탓이다. 그러니 시작조차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드물게 미디어에서 할만하다고 하는 사람을 두 명 본 적이 있긴 하다.)
정상성을 원하는 마음인가?
그래도 하고 싶은 사람들
우리는 한여름의 폭우, 폭염, 겨울의 한파와 폭설처럼 손쓸 수 없는 날씨를 대면하면서 자연의 흐름과 그 힘을 느끼곤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임신을 결심하고 내 몸의 사이클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자연의 일부이고 큰 흐름에 휩쓸려 변화를 반복하는 아주 작은 유기체 중에 하나임이 다가왔다. 틀을 벗어나보려는 몸부림이 아무리 과격해도 자연이 설계한 거대한 시스템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면서 관련 없는 일처럼 느껴졌던 육아도 만료되어 가는 가임기라는 데드라인 앞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허무하지만 이런 감정마저도 자연의 일부일 것이다. 나도 결국 가임기가 끝나기 전에 ‘그래도 낳아보기로 결정한 사람’이 되었다. 정상성을 향한 목마름이라고 보기에는 들판의 꽃과 나무, 산새들과 다를 게 없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최소한의 시간, 삼십 년
출산의 고비를 넘기자마자 양육이 시작된다. 오직 인간만이 걸음마를 떼는데 일 년이 걸린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잘도 걸어 다니는데! 유발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독립까지 약 스무 해가 걸리는 인간의 상황을 ‘성형 가능한 상태’로 설명한다. 변화가 거의 불가능하며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는 동물들과 다른 이 특징은 야생에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성형이 반복된 후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 때문에 강점이 되었다지만 나처럼 평범한 부모 입장에서는 그냥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도 이제 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일곱 살 쯤이었다. 꽤 복잡한 심부름을 해내고, 장본 것을 함께 정리하고, 플레이팅에 욕심을 내고,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티브이의 전원을 꺼야 할 시간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기저귀를 달고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허공에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으로 일곱 살을 보냈다. 아이는 유발하라리의 말처럼 성형되고 있었다. 꽤나 근사하게. 매우 느리게. 우리는 얼마동안 함께 하게 될까? 백세시대라지만 짧게 계산해 칠십 세까지 산다고 해도 나와 삼십 년은 함께 할 것이다. 이제 겨우 아홉 해가 지났다 아이의 느린 성장은 마치 아이가 영영 기저귀를 떼지 못할 것 같은 절망을 안겨줬다. 영원히 유모차에 실려있을 것 같은 불안. 사진 속에만 있는 행복에 대한 배신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천천히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짧은 시기가 소중해졌다. 가임기 안에 결정한 과거의 나에게도 감사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지난한 과정은 장기과제를 마무리할 때와 흡사한 은은하고 충만한 보람에 가깝다. 출산장려운동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지만 이런 식으로 라면 아이가 독립에 가까워 올 수록 품은 덜 들이면서 큰 뿌듯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결정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해야 한다면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좀 더 어리고 건강할 때 시작해서 셋째까지 낳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이 글을 적는 시점이 둘째가 다섯 살을 훌쩍 넘긴 시점임을 매우 강조하고 싶다. 이 시기에는 주변의 아기들이 심하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잠시지만 상상 속에서 “여보 우리.. “라고 운을 뗐다가 깜짝 놀라 멈칫했다. 이게 모두 우리가 대자연의 일부인 탓이다. (정말 귀엽기도 하지만..)
가임기 안에 임신을 계획 중인 동성커플에게
최소한 출산 전에 커밍아웃하고 부모님께 돌봄에 있어 도움을 받자. 부모님과 아무리 갈등이 심해도 출산 후에는 사이가 회복되는 것도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일까? 아기들이 귀여움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해 왔다는 점을 상기시켜 보면 일리가 있다. 커밍아웃이 출산보다 늦어질 경우 탄생의 순간이나 백일, 첫돌 같은 순간을 함께 기뻐할 기회를 놓칠 수 있어 후회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가고자 하는 길에 가변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맞닥뜨리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시간적, 금전적으로 경제적이다. 가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