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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Jul 07. 2023

커밍아웃에 대한 피드백, 교회와의 공존

엄마 둘 남매 하나, 해외 한인교회 내의 커밍아웃

커밍아웃 이야기를 쓰니 해외생활을 하는 분들께 피드백이 왔다. 현생을 살다 보니 못 느끼고 있었던 정체성에 대한 시선을 한국에 갈 때마다 체감하고 있어 공감한다는 내용. Queer friendly 한 한국 미용실을 찾을 때 파트너의 상담내용을 추가해 넌지시 대화를 건네며 시험해 볼 수 있다는 내용. 소규모의 보수적인 한인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여자친구를 남자친구로 바꿔 말한 지 너무 오래돼서 이제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까지. 내 소셜미디어에는 외국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그분들은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된 분들이라 막연히 잘 해내고 계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해외에 안정적으로 정착 한 분들이지만 나처럼 커밍아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문상담사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교회 커뮤니티에 대한 고민글에 대한 답변을 해본다.




Q. 네덜란드에서 한국교회와 일하기


술을 한두 잔 하고 글을 씁니다. 저도 비공개 게시판에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해방감을 느꼈던 터라 아드리님의 첫 글을 읽고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항상 이렇게 앞장서 이야기해 주시는 아드리 님 같은 분들께  감사해요.


저는 작은 네덜란드 속 더 작은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한국 사람들을 통해서 한글학교들이 모두 기독교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 이후로 원래도 커밍아웃과 거리가 먼 제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더라고요. 매번 거짓말과 변명을 해야 하는 출근길이 너무 스트레스받고 힘들어 커밍아웃해 버리고 싶은데 거주 환경의 특성상 그럴 수 없다는 게 참 슬퍼요.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 불리는, 최초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한국인 단체와 일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해요. 전 이 나라에 살면 제 연애사든 뭐든 자유롭게 오픈하며 살 줄 알았거든요. 가끔 직장에서 늦게 끝나 여자친구가 절 픽업하러 올 때면 "00 씨 남자친구 구경하러 가자~"라고 하는 농담도 이젠 지겹고요. 내일 한글학교에 또 출근해야 하는데 맘이 복잡해지는 밤이네요.




A. 저도 현재 교회에서 운영되는 한글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 굉장히 공감이 되는 고민입니다. 아이의 유무를 떠나서 오랫동안 사귀고 있는 분이 계시니 만약 이런 상태에서 커밍아웃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제가 이용했던 대화법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안 1.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을 정정하는 방법으로 커밍아웃하며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씨, 남자친구 얼굴 구경 좀 하자”라고 하신다면

“아, 제가 그동안 망설여져서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저는 남자친구는 없고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어요. 많이 놀라셨죠?”라고 말합니다.


제 경우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와이프로 변경했고요. 대화 상대와 초면이라면 대화의 시작이나 마지막에 “많이 놀라실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를 덧붙입니다. “ 대화의 핵심은 많이 놀라셨으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과 많이 망설였다는 점을 전달하는 데 있으니 자유롭게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던 거야?” 등의 질문이 돌아왔을 때 원하는 만큼 짧게 대답해 주셔도 좋고 “오래됐어요” 정도로 짧게 끝내고 나머지는 상대방이 소화시킬 수 있도록 정적을 두거나 자리를 뜨면서 불편하지 않게 마무리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에나 화장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안 2.

여자친구를 옆에 잠깐 서있게 하고 대화상대에게 보여주면서 “안녕하세요” 정도의 눈인사를 하게 하고 제안 1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혹시 모를 무례한 질문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여기는 00이고 제 여자친구예요. 좀 놀라셨죠?”라고 덧붙이면 당황스러운 기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커밍아웃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면전에서 혐오하거나 반대하시는 분은 없었어요. 좁은 커뮤니티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비슷한 것 같아요. 질문하시는 분들이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한번 믿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이가 두 명이나 있는 저도 커밍아웃의 타이밍을 읽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입니다. 평소 생활반경에서 멀어져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면 ‘또 언제 말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긴장하곤 한답니다. 첫 아이 전에는 커밍아웃 때문에 사연자님처럼 늘 고민하면서 지냈어요. 아기가 나온 후에도 몇 년 동안 커밍아웃의 과정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었고요. 그러다가 데드라인을 넘긴 프로젝트를 끝내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어떤 일을 끝맺음하기 위해서는 착수하는 일이 우선일 텐데 커밍아웃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런데 두려움이 너무 커서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하는 게 어려운 상태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귀찮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수를 경험해야 다음 단계인 긍정적 반응, 혹은 부정적 반응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 생각할 환경이 주어지더라고요. 물속에 들어갈 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발 끝으로 물의 온도를 체크하는 과정부터 시작하게 되지요. 일단 물에 들어가면 몸이 차가운 물의 온도에 적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면서 물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지요. 그러려면 일단 물 가까이에 가서 발끝을 물에 넣으셔야 합니다. 일단 익숙해지면 이 모든 과정에 속도가 붙게 되고 어느 순간 물속에 풍덩 들어가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되겠지요.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도전이 계속되는 긴 여정입니다.




한 집단에 커밍아웃을 하면 그 집단내에서 변화, 갈등, adoption 등을 경험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일상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그룹에 들어갈 때 또 반복이 되는 거고요. 다행인 점은 한 집단에 오래 머물수록 첫 커밍아웃 후에 추가적으로 커밍아웃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새로운 사람이 그 집단에 더해져도 내가 먼저 커밍아웃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소문이 잘 퍼지지 않는다면 입이 무거운 이웃이 있어서 좋은 일이고 소문이 빠르게 퍼진다면 더 이상 긴장해서 커밍아웃할 일이 없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오히려 상대방이 저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는 상황이 좋았습니다. 상대방이 알고 있든 없든 내가 갑자기 정체성이 변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과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어 편하고 긴장상태의 커밍아웃에서 자유로워져 좋은 사람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학기제로 돌아가는 학교에서 새로운 곳에 적응할 기회가 1년이나 혹은 4년에 한 번 정도 있다고 할 때 65세까지 몇 번의 커밍아웃을 하게 될까요? 약 35년이라고 가정할 때 결과적으로 최소한 아홉 번의 커밍아웃을 한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아홉 번째 커밍아웃을 할 때는 우리 모두 덜 긴장할 수 있도록 초반에 먼저 실수를 많이 저질러 보는 게 좋겠어요. 커밍아웃이 어렵지만 동성결혼이 합법인 나라에서의 커밍아웃은 대화의 기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분쟁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남은 것은 대화겠지요. 교회분들이 이민자로서 자유로운 나라에서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셨을 경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웃을 귀히 여기며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한번 믿어보세요. 산전수전 겪으셨을 이웃들의 경험이 생각보다 깊고 커서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신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습니다.


답이 길어졌네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상이 감사한 날들 되시길 바라며,



아드리 드림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 부탁드릴게요. 제게 큰 힘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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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중 밑미상담소의 최창석(슝슝) 상담사님의 상담내용을 참고한 부분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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