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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Jun 30. 2023

미국이니까 괜찮겠지

엄마 둘 남매 하나, 미국에서는 정말 괜찮아?

 

한국사회의 축소판에서 레즈비언 페어런팅을 외치다


미국에서 레즈비언으로써 동성 파트너와 법적으로 인정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까?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이니까? 내 대답은 ‘맞다’이다, 그리고 ‘틀리다’이다.



맞다

 뉴욕을 기준으로, 먼저 '맞다'는 대답을 하고 싶다. 배우자와 아이와의 관계를 정의하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맞다. 학교와 관련 기관은 별다른 코멘트나 질문을 하지 않고 학생의 교육에 집중한다. 다양성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염려를 이해하고 빠르게 피드백해 교실에 적용한다. 교사와의 조정을 통해 학교에 방문해서 부모가 주도적으로 특정 주제 중심으로 교실을 이끌어갈 수도 있다. 다양한 가족을 묘사한 그림책을 함께 읽거나 학생마다 가족사진을 교실 벽에 붙여두고 가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들 수 있다. 이 활동은 Family Tree 만들기라는 활동으로 한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과 타인의 가족 구성원과 배경, 관련된 문화유산 등을 이해함으로써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소속감을 강화하며 토론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2013년 DOMA 위헌 판결(결혼에 있어 성별을 남녀로 제한하는 부분이 위헌판결 됐다.) 시점을 기준으로 손에 꼽을 만큼 소수였던 어린이 책도 현재는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는 해당학급 선생님의 교육관에 따라 몇 권 정도가 학급에 비치되는 수준.

2013년에 두권 남짓했던 레즈비언 페어런팅 관련 서적들이 이제 제법 많아졌다.



틀리다

그리고 틀리다.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일이 드문 작은 한국 커뮤니티에 속해 있으면서 커밍아웃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연방 센서스가 공개한 2021년 기준 미전역 한인 인구는 총 194만 5,580명이다 (혼혈인구 포함). 미국 전체 인구 중 0.6%인 셈이다. 1%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 한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한 학급에 한국 학생이 한 명 있거나 아예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한인 인구 밀집지역이 아닌 곳에서). 그중에 하나가 성 소수자일 확률, 그 학생이 가정을 이룰 확률을 따져보면 통계를 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숫자가 된다. 이런 상황이니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눈에 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민 1세대이거나 한국과의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일상생활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에게서 받게 되는 질문과 대답에 대해 갈등과 고민이 클 수 있다. 개인적인 영역을 묻는 적의 없는 질문들이 무례함으로 둔갑하는 경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매우 틀리다

그럼 아이는 어떻게 가졌어요? 누가 낳았어요? 정자은행? 어떻게 선택하게 되는 건가요? 아이는 인종(ethnicity)이 어떻게 되나요? 얼마가 드나요?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쯤, "아이가 너무 예쁘네요"로 시작되는 대화에서의 질문은 이처럼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주로 아시아 쪽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질문이 많았다. 뼛속까지 미국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None of your business." 그러나 우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부족사회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홍익인간 정신이 건국이념인, 전쟁을 겪은 나라들 중 유일하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 아주 인자하지고 사나운 치와와를 연상케 하는 귀여운 크기의 나라에서 교육받은 이력이 있다. 개인의 취향보다 공동체의 방향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미덕인 환경. 옆집의 밥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농담을 이제 겨우 옛날일 처럼 치부하기 시작한 대한민국. 이런 배경에서 자라온 나는 선을 넘는 질문 앞에서 조차 사나운 치와와 보다 자애로운 치와와가 되기를 욕망하고 있었다. (아이고 정말!)


완전히 틀린 걸까

아이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유아기 동안 나는 한국사람들을 포함한 쌀문화권 인구를 주축으로 던져지는 순수하고(때로 순수함을 가장한) 무례한 질문으로 몸살을 앓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이 질문들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불필요하고 자세한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대화 자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아내의 표정은 어두웠다. 내 아이와 아직 나눠보지 못한 중요한 이야기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먼저 나누는 일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정보를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호감을 가지고 가벼운 대화를 하려는 상대의 의지를 꺾는 경우도 생겼다. 이 경우도 역시 석연치 않았다.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읽고도 호기심 때문에 무리하게 질문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불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라도 원만하게 대화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문화가 비슷한 사람들과 한국말로 양껏 대화하는 것에 대한 갈증과 커밍아웃에 대한 부담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단호하지만 친절하게, 대략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만 너무 자세하지는 않게. 

어떻게든 내 마음과 가족과 세상의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목표가 너무 원대했던 탓일까? 가벼운 외출에도 긴장이 됐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커밍아웃으로 전전긍긍하는 어른 하나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유모차의 핸들을 붙들고 난처해하고 있었다. 나도 커밍아웃할 때 미치도록 쿨해지고 싶다! ㅠㅠ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에 살면 레줌마가 되는 것도 쉬울 줄 알았더니.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맞다


우리 동네에는 한적한 한국 식당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친절한 서비스로 잘 알려진 그곳을 좋아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운동을 끝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주문한 메뉴가 테이블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때문에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남은 30분이 너무 소중했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식당에는 손님이 나 혼자였다. 그리고 친절한 사장님이 내쪽으로 다가와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미국에는 언제 왔는지, 남편은 뭘 하는 사람인지, 그쪽에 지인이 있는데 그 사람을 아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뒤를 이어 언제 결혼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몇 살인지 등을 꼼꼼히 짚어나가셨다. 혼자 조용히 밥을 먹고 사라지고 싶다는 점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무리 짧게 끊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당시 각종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 지쳐있던 상태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이 이어져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려는데 결국 이 사장님이 선을 넘었다. ”그래서 아이는 어떻게 가졌어요? 아기 사진 좀 보여줘요. “ “나중에 친해지면 보여드릴게요.”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돌아온 대답은 “허, 나 참. 난 우리가 친해진 줄 알았는데!” 쌩하게 뒤를 돌아 주방으로 걸어가는 한국 아저씨의 뒷모습에 마음이 짜게 식었다. 왓더..? 어쩜 저런 아저씨가 다 있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찰나.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화가 치밀었다.


“아까 내가 너무 personal 한 걸 물었다면 미안해요. “


너무 개인적인 것을 캐물어 미안하다는,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사과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어쩌면 한국사람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생활을 집요하게 캐묻고 미안한 기색도 없이 오히려 역정을 내며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는 한국 아저씨를 포함해서. 아저씨들은 평생 바뀌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런 아저씨들도 미국에서는 이렇게 쉽게 사과를 하게 되는 건가. 아무래도 미국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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