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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Apr 02. 2024

골든아워 The Golden Hour

엄마 둘, 남매 하나 <후회와 낭만>

요새 집에서 뭐 하니?


오랜만에 친구 소희의 연락이 왔다. 한 살이 되지 않은 딸과 집에 있으면서 말하는 법을 잊을 것 같았는데. 내 입에서도 옹알이가 나오려 할 때쯤 받은 연락이 반가웠다. 아이가 낮잠에 들자마자 온 연락에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조용하고 힘차게 손가락을 움직여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의 간단한 근황이 이어졌다. 늘 바쁘게 지내는 편이었던 친구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활기가 넘쳤다. 요즘은 새로운 일을 해볼까 한다는 말을 전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의욕에 타오르는 친구에게 아이 보는 일상을 전하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대화가 마무리되고 핸드폰을 내려놓자 아이가 깼다. 운이 좋은 날이었다. 이제 다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차례다. 책을 한 아름 꺼내 읽다가 병원 놀이를 하고 블록과 점토를 꺼내 몇 번 만지니 거실에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밥을 먹일 시간. 장난감이 지천인 거실을 뒤로하고 밥을 먹이려 부엌으로 딸을 옮겼다. 아이 식단을 모아놓은 책에서 본 음식을 준비해 테이블 위에 놓지만 이번에도 불합격.  반은 바닥에 떨어지고 반이 남은 음식들을 치우면서 사골 육수 국물에 밥을 말아 한입씩 떠 먹였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지만 탄수화물이라도 잘 먹으면 됐다. 더러워진 옷으로 손을 벌려 안아달라는 아이를 들어 거실 소파 옆에 앉히고 뽀로로를 시청했다. 유난히 해가 긴 오후. 저녁이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시간을 보낼 일이 마땅치 않아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괜히 밖으로 나가서 바람이라도 쏘이려면 채비를 해야지. 만약을 대비한 물건들로 가득한 가방이 아이만큼 커졌다. 도서관에 준비된 장난감을 붙잡고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말리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다시 아이를 품에 안으니 짐을 들 손이 없다. 짐은 유모차에 얹고 아이는 유모차에 앉혀 동네를 빙빙 돌았다. 세 살까지는 데리고 있어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따랐다. 그래도 매일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두 다 늦어버린 깨달음이다. 퇴근한 아내와 딸이 잠을 청하러 들어가자 나도 한숨 돌리고 불을 껐다.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며 아이가 보채는 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렸다. 어둠 속에서 아이 소리가 잦아들자 낮에 소희와 나눴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나 정말 바쁜데.”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치우고, 달래고를 반복하면서 아기가 잘 때 나도 쉬면서 지내느라 분주하다고 설명을 했지만 그 친구라면 더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어둠 속에서 베개 밑으로 파고들었다.


이야기나 원 없이 들어줄걸


후회가 밀려왔다. 어릴 때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생각나서였다. 아이를 가진 친구들이 난데없이 아이가 없는 내게 연락을 하며 손을 내밀 때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선명한 사회망 속 안정된 가족관계를 늘 원해왔던 친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전처럼 대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원했던 결혼을 해 가족을 만들고 귀여운 아이도 있는데 왜 이렇게 징징대는 것인지. 사랑도 결혼도 마음대로 결정하고 이제 와서 무슨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육아의 난관에 대해 들어봐도 딱히 해줄 말이 없어 농담으로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집에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행복한 푸념을 한다는 생각이 떠다녔다. 그때 그냥 말없이 들어주기나 할걸.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실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던 나와 아직도 친구로 남아주다니 이제 언니라고 부를 마음의 준비가 됐다. 친구의 아이는 다 커서 혼자 버스를 타는데 나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을 들고 버스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이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진심 어린 공감의 말을 전할 수 있을지. 없을 거다. 모르는 상황을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늦은 깨달음을 들고 친구가 타지도 않은 버스 뒤꽁무니를 쫓으며 그대로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운명이었다.


낭만필터


이사 후 오랜만에 전에 살던 집에 들르게 됐다. 삼 년 만이었다. 그 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두 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2층의 난간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사이로 떨어질까 봐요. 위험하지 않나요?”


“난간 간격이 촘촘해서 떨어질 일은 없어요. 아이 머리가 들어갈 수 없는 간격이거든요.”



짧은 대답이 끝나고 이어지는 정적이 어색해서 집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게 됐다.

“.. 이 집이 아기 키우기 정말 좋아요. 집을 둘러싼 가든을 걷게 하기도 좋고 여름에는 나뭇잎이 드리워져서 앞마당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시원해요. 코너를 돌면 작지만 여름에 애들 놀기에 충분한 커뮤니티 수영장과 놀이터도 있고요. 커뮤니티 안쪽은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기도 너무 힘들지 않고 적당한 거리예요. 이웃 아저씨도 친절하시고. 전 이 집에서 계단을 잘 이용했어요. 아이가 위에 앉아서 공을 던지면 제가 아래서 받아서 다시 위로 던져 주고 놀았거든요.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돼서 힘이 덜 들었어요. 위층은 파일이 짧은 카펫이라 더러움이 덜 타고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너 정말 여기서 좋은 기억이 많았나 보다”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사실이지 뭐. 애들 키우기 좋은 집이잖아. 대형 슈퍼마켓도 걸어갈 수 있어서 운전 못하는 어르신들도 좋아하셨고.”


‘좋은 기억’이라는 아내의 말을 듣자 sns에 올렸던 사진들이 생각났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찍혀 정제된 사진들. 손에 고기조각을 들고 나를 먹이는 아이의 손.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입을 오물거리는 청설모와 지금은 죽고 없는 고양이가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을 담은 영상. 스쿠터를 끌고 갑자기 빠르게 달리는 딸아이를 당황스러워하는 순간. 최대한 정성스럽게 야채를 손질해 눈이 내리는 풍경과 함께 두면 운치 있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팟. 준비만으로 지쳐버리는 수영장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 엉망이 된 딸아이의 젖은 곱슬머리. 오후 네시, 햇살이 닿는 곳이 모두 아름답게 찍히는 골든아워에 유난히 길게 늘어지는 내 그림자를 보고 있으면 하나뿐인 그림자가 더 선명해졌다. 세 살까지는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면서도 켜켜이 쌓인 지난날들을 생에 한 번만 만질 수 있었던 진귀한 물건처럼 느끼는 내가 정말 이상했다.

정현이 결혼식에 다녀왔어

핸드폰 화면 너머에서 엄마가 말했다. 정현이는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의 옆집 딸 이름이었다.


“선경이 엄마 아빠도 와서 오랜만에 봤어.”


선경이는 뒷집에 살며 나와 친했던 친구의 이름이었다.

엄마의 입에서 정현이나 선경이의 이름이 나오면 이미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기분이었다. 엄마 이야기를 듣는 게 나쁘지 않지만 현생과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집중이 흐트러졌다.


내가 어릴적 살던 동네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의 배경과 매우 비슷한 곳이었다. 골목을 하나 끼고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중학교 때 전학을 갈 때까지 그곳에서 쭉 지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전부인 곳에서 세 가정의 왕래가 잦았다.


“오랜만에 보니까 다들 나이가 많이 들었더라. 몸 여기저기가 조금씩 아프고. 너희들 어릴 때 이야기 많이 했어. 애들 어릴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더라.”


어릴 때 아빠는 아침마다 집 앞 도로의 먼지를 물청소 하셨다. 집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남달라 만들고 고치는 일을 하는 모습이 익숙했다. 친척들은 아빠를 불같은 성격이라고 불렀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성격이 좋다고 했다. 모든 대화가 심각한 아빠와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앉아있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무언가를 돌보거나 누군가를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때가 제일 좋았다며 입을 모았다니 정말 이상했다. 그동안 부모님 눈 속에 간직되어 있을 골든아워를 알 길이 없었지만 결혼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애썼던 시간은 흔적 없고 무용하지 않은지. 생각이 어둠 속에서 베개 밑으로 파고들 때조차도 골든아워의 햇살은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를 비추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초조함과 상관없이 그만의 속도로 지구를 고루 비추면서. 어둠의 흔적과 골든아워의 햇살이 만날 때 과거는 비로소 입체적인 모양을 갖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우리의 일부가 된다.



What we have once enjoyed we can not lose.
All that we love deeply becomes a part of us.
우리가 즐겁게 했던 일들은 그냥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일부가 된다.

Helen Keller 헬렌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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