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 남매 하나 <아버지의 날에 일어나는 일>
So Marco said, “Why they host a birthday party in Father’s day?”
마르코가 그러는 거야. ”왜 이 사람들은 굳이 아버지의 날에 생일 파티를 열려고 하냐? “ 그래서 내가 속삭였지.
“Because they are lesbians, they don’t care about Father’s Day.”
“걔네는 레즈비언들인데 무슨 아버지의 날 타령이니.”
발레리와 마르코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독일, 미국계 커플이다. 아이가 셋인 이 가족은 늘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첫째 릴리는 내 팔꿈치 정도의 키였던 첫 만남의 기억을 뒤로하고 지금은 나보다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막내딸이 첫째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발레리는 희극인 그 자체. 발레리는 항상 우리 레즈비언 패밀리에 대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농담을 던진다. 언젠가 데이케어에서 있었던 우리 딸 나나의 일화를 전해준 것도 발레리였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같은 반 남자아이 앞에서 엄마가 둘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와 함께 박장대소했던 사람이다. 모두 가까운 사이라 가능한 농담이다. 비몽사몽인 아침, 우연히 동네 홀푸트 마켓에서 마주친 발레리 덕분에 크게 웃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바쁜 6월, 의도치 않게 아버지의 날(Father’s day)로 미뤄진 딸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이 “It is Father’s Day..?” 아버지의 날이잖아라고 중얼거릴 때마다 별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미국에서 이 날은 아버지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 중심의 날이다. 우리가 Mother’s day(Mothers' day. 집에서는 복수형을 적용해 어퍼스트로피의 위치를 바꿔서 사용한다.)에 꽃과 선물을 준비해 열심히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며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날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날 파티를 열겠다고 초대장을 보냈으니 사람들은 당황했던 것인데 눈치를 못 챘다. 아내와 나는 헤테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지만 모모가정의 모양을 갖추고 생활한 지 십 년 차쯤 되면 우리 이야기 외에는 별로 신경 쓸 여력이 없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듯 다른 하루를 맞이하고 반복되는 기념일을 기뻐하다 보면 일 년씩 훌쩍 지나있었다. 일찌감치 내년 방학을 위해 같은 듯 다른 계획을 세우는 일에 익숙해지고 데드라인을 차례로 넘다 보면 오늘이라는 미래에 있을 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둘이라 어머니의 날만 바쁘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아버지의 날에는 양가 할아버지께 드릴 카드를 쓰느라 두 개의 작품을 만드는 일을 피해 갈 수 없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였다. 어머니만 있거나 아버지만 있거나, 조부모가 보호자이거나, 다양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미리 누구에게 카드를 보내고 싶은지를 묻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오늘은 아들의 담임 린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로하가 아버지의 날에 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줄 건가요??”
“한국 할아버지와 중국 할아버지에게 줄 것 두 개를 만들면 되겠어요. 어머니날에 했던 것처럼 귀찮으면 하나만 써서 복사하라고 해도 되고요. 하하!”
“하하, 이번에는 어머니의 날처럼 복잡한 걸 만들지 않으니 괜찮을 거예요. 간단한 카드를 쓸 예정이거든요. “
우리 아이들은 어머니의 날에 아마도 반에서 제일 바쁜 아이들일 것이다. 특히 딸은 엄마에게 줄 사랑쿠폰(설거지하기, 아침 차리기 등 집안일이 귀찮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쿠폰이지만 오히려 집안일이 많아지는 건 아닌지 의문인), 그리고 사랑하는 이유를 나열한 꽃다발 모양의 대형카드처럼 얼핏 봐도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을 만들어 온다. 혼신의 힘을 다 해 이 날을 준비한 아이와 선생님의 노고가 느껴져서 모두에게 감사하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것을 두 개씩이나 만들어와야 하니 다른 친구들보다 집중력 있게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딸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고 늘 아내와 나 모두에게 근사한 만들기 결과물을 보여준다. 일주일 전부터 꼼꼼히 준비해 온 나를 사랑하는 이유 리스트와 감사 요목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딸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다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또다시 바로 어제 일인 듯 선명해 향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향수에 젖는다. 수많은 식물을 잃은 내가 뭔가를 이토록 열심히 키워본 적이 있나. 없다. 아무것도 그 애를 돌봤던 것처럼 열심히 돌볼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만 여섯 살이 된 아들은 첫째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소근육을 잘 쓰는 편이지만 같은 만들기 작품을 두 번씩 반복해 만드는 것은 좀 지루한 일이었나 보다. 선생님은 복사본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양해를 부탁했다. 나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쏟는 편인 아들이 나를 위한 작품을 한 장 만든 후 복사를 부탁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선생님과 함께 많이 웃었다. 둘째도 당연히 무조건 두 개를 만들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보며 어제 단정 지었던 일을 오늘 번복하게 되는 육아의 변화무쌍함만 확신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날에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어쩌나.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미리 걱정했던 때가 있었다. 방과 후 늘 분주하게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늘어질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 볼까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여느 때와 똑같이 카드를
두장씩 쓰며 바쁘다니 머쓱 해진다. 그리고 이런 머쓱함이 감사한 6월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