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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안 Jul 11. 2022

쓸모 없고 낭만적인 망상들

예전부터 관심 있던 물건이 있다. 언젠가는 모슈의 아이보리 색상의 주전자를 부엌에 올려두고 싶다. 이유는 단순하다. 예쁘니까. 예쁜 것은 보는 이를 흐뭇하게 만든다. 예쁜 것이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래서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하는가 보다. '오늘의집'이 인기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나 예쁜 집에서 살고 싶어하니까. 물론 나도 그렇다. 비록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처지라 벽에 못 하나 박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집을 예쁘게 꾸미고 살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려 본다.


예쁜 것은 뭐든 다 좋아하지만 최근에 관심 있었던 것은 그릇이다. 예쁜 그릇들이 갖고 싶다. 사실 20대 때는 그릇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30대가 되고부터 차차 눈에 들어왔다. 친구가 말했다. 예쁜 그릇이 좋아지면 나이가 든 거라고. 맞는 말이다. 독립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지도 않았고 다른 것에 훨씬 관심이 많을 어린 나이에는 미처 그릇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정작 결혼을 하면서도 종지 그릇 하나조차 새로 사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결혼하기 전에 각각 오랫동안 자취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살림살이를 합치고 보니 이미 그릇이 차고 넘쳤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짱한 것을 내버려두고 새 것을 산다면 순 낭비에 환경오염이 될 테니 꾹 참았다. 나중에 더 예쁜 그릇을 살 날이 오겠지. 대신 친구에게 근사한 티세트를 결혼 선물로 받았다. 유려한 순백색에 금빛을 더한, 세련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노리다케 티세트다. 마음에 쏙 든다. 덕분에 새 그릇을 사고 싶었던 아쉬움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릇은 일상적이지만 티세트는 좀 더 낭만적이잖아.


평소 커피와 차, 과일청을 좋아한다. 그런 만큼 티세트도 좋아한다. 고풍스럽고 엔틱한 디자인의 티세트를 잔뜩 모아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처럼 말도 안 되는 파티를 벌이고 싶다. 손님, 오늘의 시그니처 메뉴는 저녁놀의 분홍색 구름이랍니다! 달콤한 휘핑크림이죠. 오, 아주 좋아요! 하지만 난 지금 도넛이 당기는 걸요. 그렇다면 저 구름에 손가락을 넣고 휘휘 젓고는 꿀꺽 삼켜버리세요! 이런 식의 망상을 떠올려 본다. 만약 혼자 살았다면 이런 망상을 실천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딱 티세트에 관심을 갖던 시기에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티세트를 사들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까지 나는 어떤 것 하나에 정신없이 몰입하면서 일상도 제쳐두고 허우적대다가는 어느 새 시들해지고 또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고 추앙하다가 이내 택배도 며칠간 뜯지 않을 만큼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많기 때문이다. 진득하게 오래 붙드는 취미가 좀처럼 없다. (물론 남편은 앞으로 평생 덕질할 것이다) 요즘에는 아이패드로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데, 이것만큼은 꾸준히 하는 취미로 만들기로 다짐했다. 잘은 못 그리지만 그냥 한다. 못 그리면 어때. 취미인데. 이 세상은 뭐든 잘 하라고 강요하는 것 투성이다. 취미조차 생산적이어야 하고 파이프라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친다. 지겹다. 나는 못난 자유를 누릴 것이다. 어차피 고양이는 못 그려도 귀여운 존재더라.


다시 티세트로 돌아가서, 망상을 해 본다. 오후 네 시에도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어느 한여름 날에, 18세기 귀족 아가씨가 뜨거운 테이블에 팔을 조심스레 대고 앉아서는 예쁜 티세트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로즈 히비스커스 티를 마시면서,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리고 연애편지를 쓰는 거다. (좀 이상한 망상이지만 계속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히비스커스 티처럼 발그레한 뺨을 가진 그 아가씨에게는 정략 결혼자가 있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가씨는 마을에서 소를 돌보고 꿀벌을 키우는, 웃음이 정직한 어떤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 소년은 어느 누구에게나 친절했는데 특히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연약한 동물들에게 잘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아가씨와 마음씨 착한 소년은 남몰래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아가씨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부모는 반대했다. 어딜 감히! 저런 평민 녀석은 절대 안 돼! 아가씨는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밤 달빛 아래 으슥한 언덕의 사시나무 위에 사는 요정을 찾아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다. 그 소년과 둘만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대충 지어낸 것이니 계속한다. 원래 사람들은 익숙한 얘기에 끌리는 것 아냐?)


요정은 귀족 아가씨의 머리카락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아가씨가 소년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 둘만의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요정은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아가씨로 변신하더니, 귀족 가문의 딸인 양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집안을 거덜내고 부모를 거지로 만들어 쫓아내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아가씨가 부모가 걱정되어 남몰래 찾아오니,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아가씨가 화를 내자 요정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줬을 뿐인데, 뭐가 문제야? 네가 그냥 집을 떠나면 네 부모가 온갖 수소문을 했겠지. 내가 잠시 네 행세를 하며 시간을 벌어주는 게 네 행복을 위한 최선이었어. 그런데 왜 따지는 거니?" 아가씨는 항변했다. "나는 우리 집안을 몰락하게 하고 부모님을 내쫓으란 말은 안 했어!" (쓰다보니 유치하고 귀찮다. 이제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졌으니,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혹자는 도대체 왜 이런 망상을 하는 거냐고 물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짝에 쓸모가 없더라도 즐거운 일들이 있다. 내게 망상은 그렇다. 일부러 하는 건 아니고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멋대로 흘러가는 거지만. 왜 생산적인 쪽으로는 생각을 못 할까? 18세기 귀족 아가씨를 상상하고 나니 18세기 로코코풍 공주 드레스가 갖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경성스타일 드레스는 괜찮은 걸로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걸 입고 한국민속촌에 놀러가면 관종인가?


다시 모슈 주전자와 노리다케 티세트로 돌아가서. 커피를 마실 때 테이블에 아주 자그마한 꽃을 같이 놓고 싶다. 플라워 카페에서 하는 것처럼 자그마한 꽃병이나 단지에 꽃잎이 작은 꽃 한두 송이만 꽂아놓는 것이다. 조만간 이사를 갈 예정인데, 지금 집보다는 새로 이사가는 집이 햇빛이 훨씬 잘 드니까 거기서는 그렇게 해 봐야지. 살구빛 스위트피처럼 녹아버릴 듯 여린 꽃잎을 가진 꽃을 놓을 것이다. 고개를 살짝 떨군 모습이 서글프고 곧장 솜사탕처럼 녹아버릴 것만 같아서 이끌린다. 따가운 햇볕에 질려 시든 모습도 어여쁘다.


나중에는 꼭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 나는 아파트가 정이 안 가. 아파트에 산 세월은 길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물론 단독주택이 관리하기는 훨씬 힘들겠지만 좀 더 낭만적이고 자유로울 것 같다. 마당을 가꿀 수도 있잖아? 색색의 꽃을 심고 싶다. 길고양이들이 놀러올 수도 있으니 고양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식물들로 골라서 말이야. 기꺼이 튤립과 백합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왕이면 캣닢을 심을까? 고양이를 위한 푸른 정원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할 수 있을까? 나는 똥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다양한 식물들을 들인 적이 있는데, 낭만의 정원이 아니라 서바이벌 정원을 만들었다.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 <오징어 게임>이었다. 죽어버린 식물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는 건 로망이지만 아무나 하는 건 아닌 듯하다. 괜히 장소 탓을 해본다. 햇빛이 잘 안 드는 집인 것을 어떡하겠어. 새 집에서는 식물을 더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정원을 제대로 가꾸려면 마당이 있는 집이 있어야 할 텐데, 이사를 가든 말든 현실의 나는 세입자다. (이래서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에 불을 켜고 건물주를 꿈꾸는 거구나!) 문득 내가 어렸을 적 엄마아빠가 전세살이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 집은 애가 셋이었기 때문에 집을 얻으려고 할 때마다 집주인들이 죄다 싫어했다고 한다. 애들이 많으니 극성맞게 방방 뛰어다니면서 온 집안을 망쳐놓지는 않을지 걱정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한 번은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집을 망가뜨렸다며 덤터기를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억울해. 한 번은 집을 구하는데 어떤 집에서 굉장히 못마땅해하다가 결국 우리를 받아줬는데, 정원이 있는 집이었다. 우리 삼남매는 아주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셋 다 얌전한 성격이기도 했다. 결국 정원의 꽃잎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이후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되자 집주인은 아빠에게 그간 사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다. 아이들이 어린데도 그렇게 점잖았다고. 처음에 반대해서 미안하다고.


아이가 많으면 싫어하던 옛 시대를 떠올려 본다. 아직도 어린이를 혐오하는 시대이지만 90년대는 더했다. 엄마는 우리들을 데리고 택시를 탈 때마다 손가락을 펼쳐 '따따불' 표시를 했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자그마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차들이 휙휙 달리는 길가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식하게 애를 셋씩이나 낳았느냐"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시대를 지나 요즘에는 아이를 안 낳는다고 야단이 난 세상이 되다니 참으로 기묘하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혐오한다. 그런데 낳으란다. 사회가 혐오를 안 해야 아이도 낳을 것 아닌가? 노키즈존을 정당화하고 양육자에게는 '맘충'이라면서 아이 많이 낳길 바란다는 게 우습다. 그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아이들의 행복이 아닌 기성세대를 위한 연금이라는 것도 소름끼친다.


어떤 어른이 되고 어떻게 늙으면 좋을까?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은 어떨까? 정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헤르만 헤세의 정원이나 타샤 튜더의 정원이 떠오른다. 그렇게 문학이랑 예술하면서 정원을 가꾸는 노인이 되고 싶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을 가꾸며 자연과 인생의 진리를 담은 에세이 <정원 일의 즐거움>을 쓴 적이 있다. 타샤 튜더는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것으로 유명하다. 타샤 튜더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그는 18세기풍으로 농가를 짓고 19세기 골동품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수집했다고 한다. 내가 티세트를 모으고 싶었듯이 이미 그런 삶을 실천한 선구자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타샤 튜더는 너무나도 낭만적인 할머니다. 이래서 내가 18세기 드레스를 갖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타샤 튜더처럼 살아야겠다. 이렇게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만든다!


정원을 가꿀 결심을 하니  가지 걱정이 든다. 나는 벌레를 정말 많이 무서워한다. 만약 정원을 가꾼다면 매일 소리를 지르면서 남편을 부를 것만 같다. 거미도 많겠지. 으으... 무섭다. 새가 많은  좋은데. 고양이가 많은 것도 좋은데. 벌레는 무서워하는 내가 싫고 참으로 못됐다. 벌레가 잘못한  뭐가 있다고. 꿀벌은 귀여워하지만 말벌은 무섭다. 장수말벌은  소리가 아닌 드론 소리를 내 곤충보다는 흡사 포켓몬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가라! 독침붕!) 그만해야겠다. 말벌을 차별하는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내가 노인이 되었을 무렵 기후위기로 꿀벌들이  죽으면 어떡하지?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는 또 있다. 고양이를 위해 집을 짓는 게 꿈이라서 그렇다. 길고양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 따뜻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집 마당에 고양이 쉼터를 마련하고 싶다. 아픈 아이들은 병원에 데려다 주고 싶다. 얼마 전에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방송에 나온 사연이 떠오른다. 유기견과 유기묘 110마리를 돌보는 건설회사 사장님의 이야기다. 에어컨과 난방시설을 잘 갖춘 쾌적한 쉼터에, 먹이도 좋은 것을 주고 주기적으로 수의사를 불러주며, 동물들을 케어하는 직원들도 20명을 채용해서 연간 15억 원을 쓴다고 했다. 물론 건설회사 사장님이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주 멋진 분이다.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나도 갈 곳 없이 늙은 고양이와 병든 강아지를 돌보고 정원을 가꾸고 집을 지어야지. 집에는 무조건 다락방이 있어야 한다. 1930년대 빈티지 재즈 음악을 집안에 틀어놓고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겠네. 역시 희망은 로또인가?


집을 잘 갖추고 나면 이웃집 아이들도 얼마든지 놀러오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이 놀러오면 레몬차를 끓여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하필 레몬차인 이유는 따로 있다. 만약 아이들한테 쌍화차 줄 테니까 오렴, 하면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마들렌이랑 같이 내주면 잘 어울릴 것 같다. 호두랑 아몬드가 들어간 바닐라 피낭시에도 좋고, 무화과가 들어간 고르곤졸라 피낭시에도 맛있다. 아이들이 만년필로 글을 쓰도록 해주고 싶다. 자기만의 필기구로 쓰면 더더욱 기억에 남을 테니 만년필이면 좋겠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썰렁한 이야기도 들려줘야지. 물론 저출생 고령화 시대이니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는 어린아이들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우아한 말괄량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는 아마 구순을 넘게 먹어도 망상을 할 것만 같다. 사실 그 나이까지 살고 있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순의 나이에 이런 망상을 한다면 사람들이 치매라고 오해할까봐 걱정이다. 아니야, 미래 시대에는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인공지능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진 유리문이 '이 할머니는 안 미쳤습니다. 단지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에요'라는 메시지를 띄워줄 것이다. 집주인이 원하는 메시지를 시시각각 띄우는 기술이 나온다면 내 변덕스런 마음도 좀처럼 오해받지 않을 것이다. 역시 디지털 문명에 밝은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난 지금도 IT 분야에 관심이 많으니 아마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게 또 있다. 호호백발이 되면 탈색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백발을 연보라색으로 물들여야지. 지금은 탈색은 기본이고 뿌리 탈색까지 신경써야 하니 너무나도 귀찮지만, 그때는 염색만 하면 될 테니 훨씬 간편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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