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이 있다.
숏컷, 청바지, 헐렁이는 워커로 떠오르는 당신은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의 마지막 선생님이었다. 내게 예쁘고 반짝이는 장신구 대신 얼마 전 다녀왔다던 히말라야 사진을 자랑했던 당신은 '여선생'보다 '보헤미안'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노래와 술과 여행을 좋아하던 키 작은 거인이었다. 나는 어쩌면 당신을 우러러보았고, 어쩌면 당신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노래, 술, 여행 다 좋아하네.
12년 전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내게 당신은 이 책을 선물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활자 속에 떠오르는 당신의 초상을 그리며 왜 그때 당신의 연락처 하나 얻어두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중학생이 되고 얼마 후, 우연히 길을 걷다 본 당신의 뒷모습에 왜 달려가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소위 어른이 되어 떠올리는 당신의 얼굴은 그리움의 선명함이 무색하게도 흐릿하다.
어느덧 업종이 몇 번은 바뀌어버린 피아노 학원 앞을 지나며 나는 당신이 해주었던 케첩이 잔뜩 든 떡볶이를 추억한다. 레슨 중 틀릴 때면 손등을 때리는 대신 허허 웃으며 "연습 더 해야겠네."하던 당신의 음성을 되뇐다. 나도 누군가에게 추억할 만한 선생님이, 아니 어른이, 아니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당신으로 인해 내 유년의 기억은 참으로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