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투자를 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왜 이 시점에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회사마다, 그리고 회사가 처한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부터가 본격적인 투자유치의 시작이다.
작년 초, 우리는 회사가 지금 갈림길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1. 한 해 20~30%씩 marginal 한 성장을 하며, 몇 년 안에 BEP 맞추고 이익 내며 조용히 굴러가는 회사가 될 것인지
2. 우리가 지향하는 글로벌 SaaS 로써 2x, 3x 성장을 위한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 볼 것인지
어쩌면 꽤 상반되는 이 두 가지의 방향 중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고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2번의 방향에 대해서는 재무팀, HR까지 함께 붙어서 best와 wosrt case, 그리고 worst 가 되면 그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보며 꽤나 오랜 고민을 거쳤다.
그리고 우리는 뛰어보기로 결정했다. 아니 날아보기로 결정했다.
그 이름하야 푸드덕 플랜... 우리 죽더라도 날갯짓 한 번은 제대로 해보고 죽자!라는 누군가의 코멘트에서 시작된 '푸드덕'이란 단어는 어디 내놓기 창피해서 우리끼리는 PDD Plan이라는 코드명으로 부르곤 했다.
그 이후로는 PDD(...)을 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를 위해 영업 및 제품 영역에서 강화하고 투자해야 할 부분들이 구체화되었고, 예상하는 기업가치, 지분 희석 등 다양한 고려사항을 감안하여 목표 금액도 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이번 라운드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토대가 되어 주었다.
이제 투자유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투자사들에게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가 따라와야 한다. 그것이 equity story(에쿼티 스토리)이다. 나도 equity story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 들어봤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 회사, 우리 제품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과 비전, 그리고 왜 우리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전에 투자를 받을 때 사용했던 IR deck 이 있긴 했으나,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도, 사람도, 우리가 그리는 미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의 C-level 들과 다 같이 모여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회사와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CEO는 물론, CRO, CFO와 우리 팀이 모여서 하루 종일 진행했다. 굳이 이렇게 다 모여서 한 이유는 alignment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IR deck은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략으로 이어져야 할 내용이기에 리더십의 일치된 이해는 필수적이다.
Equity story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가장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부분을 몇 개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 지금까지 회사가 밟아온 성장 단계
과거부터 우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하나씩 이름을 붙여 정리했다. 예를 들어 10년의 업력이라고 하면, 4단계 정도로 나누어서 1) 제품 개발 2) B2B 고객사를 위한 제품 최적화 등등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와 그 사이 유치했던 투자 이력을 간단히 작성했다. 이를 통해 우리 회사를 처음 접하는 투자사들도 그간의 여정을 압축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우리가 타겟하는 시장
이 부분이 좀 까다로웠다. 우리 제품은 이미 존재하는 시장에서가 아닌, 전통적인 워크플로우를 바꾸어가며 매출을 만드는 제품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바꾸어가고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정의하고 monetary value로 치환하는 과정은 많은 고민을 요구했다. 또한 정의하는 시장이 정체된 시장이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것을 다양한 동인을 가지고 설명해야 했다.
브레인스토밍 세션에서는 우리 제품이 기능적으로 어떤 직무를 대체할 수 있는지, 어떤 산업에서 그 직무가 활발히 쓰이는지,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어디가 그 산업이 많은지 등 개념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이에 착안하여 산업리포트와 자체적인 시장분석을 가지고 숫자로 백업하는 과정을 거쳤다.
- 제품과 경쟁 구도
당연히 제품과 경쟁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여기서는 이 제품을 구상하고 개발한 CEO가 본인이 겪었던 근본적인 pain point를 공유해 주었고, CRO 가 고객들로부터 받았던 의견들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고객이 겪는 문제와 우리 제품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너무나 핵심적인 부분이라서, 일단 우리 팀부터가 그것을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이해하려 했다. 앞서 언급한 CEO와 CRO가 하는 이야기를 A to Z까지 매우매우매우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많은 질문이 오갔고, 이후 이를 어떻게 쉽게 표현할지에 많은 공을 들였다.
경쟁구도는 사사분면을 활용해서 작성했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기능과 편의성을 각각의 축으로 두고 우리가 어디에 있고, 다른 경쟁사들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표현했다.
또 하나 경쟁 구도 이야기를 하며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위협적으로 보이는 경쟁사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랑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굉장히 유명한 대기업 이 있다. 다만 현실은 달랐는데, 고객들의 실제 워크플로우에서는 대기업 제품을 사용한 이후 우리 제품을 쓰는 일종의 연속성이 있었다. 이에 그들과 우리는 경쟁 관계가 아닌 보완 관계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주었고, 어떻게 보면 경쟁 구도를 설명하는 동시에 투자사로부터 충분히 나올 수 있을만한 핵심적인 우려사항에 대해 일종의 선수 치는 장표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미래 성장 전략이나 구체적인 투자 분야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 달랐었나 하고 놀라는 부분도 있었고, 생각지 못 한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부분도 있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가공하여 일종의 뼈대를 만들었고, 그를 기반으로 IR deck을 제작했다.
쓰다 보니 주절주절 길어졌는데, 다음번엔 우리 같은 비상장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부분을 얘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