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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Feb 12. 2018

헤밍웨이를 찾아서,

프라하의 잠 못 이루는 밤


프라하에서의 며칠 동안은 항상 취기가 올라 있었던 것 같다. 작디작은 도시에 들어찬 수 백, 수 천 명의 관광객들은 코딱지만 한 광장을 가득 채웠다. 시계탑 앞에 늘어지게 줄을 서고, 다리가 무너져라 각자의 소리로 외쳐대었다. 나는 아무 낭만도 보지 못했고 아무 동화도 듣지 못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나는 존재감 없는 작은 성당이나, 골목 따위를 누비며 낮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해가 어스름이 지면 그제야 같은 방 친구 몇과 언덕 위의 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겨서 맥주를 연거푸 마셨다. 해가 지고 반짝거리는 도시를 바라보며 예쁘다 예쁘다 하고 떠들어댔다. 그리곤 다리를 건너 헤밍웨이 바에서 체코 전통 술로 만들었다는 기가 막힌 칵테일을 털어 넣었다. 허브향이 잔뜩 나는 칵테일을 한 잔, 두 잔 마시면 몽롱해졌다. 바에서 파는 노란색 컵을 사고 팠는데 노란색만 빼고 다 살 수 있다고 해서 관두었다. 그렇게 불그스레한 뺨을 하고 자정이 넘어 인적 드문 까를교를 내달렸다. 걸어서 혹은 뛰어서 혹은 비를 맞으며.

체코를 떠나는 날,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산책을 할까 하고 문을 나섰다. 7시도 되지 않아 도시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듯했다. 그제야 나는 순진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새벽안개에 싸여 빛바랜 색을 하고 있는 파스텔톤의 벽들과 푸르스름하게 빛을 내는 까를교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시 꺼내어 보지 않을 나의 사진을 몇 장 찍고, 인화해서 벽이든 어디든 붙여서 오래도록 보고 싶을 사진을 잔뜩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무 신문 가판대에 가서 섰다. 그리곤 새벽의 프라하, 저녁 즈음의 프라하를 그린 자석을 하나씩 샀다.

집에 돌아와 희멀건 냉장고에 자석을 붙였다. 그 날의 술기운이 피식 올라오는 듯하다. 언젠가 헤밍웨이 바의 노란색 머그컵을 사러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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