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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에는 클럽이 너무 많아. M을 찾는 분투. 골목을 돌고도 더 돌아야하는, 그래야 한다는 숨바꼭질. 혁명이란 괴물이 금이 간 학교 벽 사이에서만 슬쩍, 욕망으로 피임된 자유를 보여주는 늦겨울. 코트 깃을 아무리 세워도 깃은 고작 7센티미터일 뿐. 금이 간 벽 안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무엇보다 주로 주인 행세하는 바람이 거세기만 하다. 제길.
초청명단에 있어야할 쉬운 이름이 도통 없고, 해서 난처하지 않은 얼굴로 도장을 찍어 초청명단을 급하게 날조하여, 겨우 깊은 계단을 굴러 떨어지듯 내려갔더니, 삐리리~ 늙은 핸드폰이 울음 운다. 다시 사진을 찍자는 사람의 전화. 찍고는 싶소만 그대는 남의 사정을 참 몰라도 주시는 구려. 1357번. 지독히도 홀수이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삐딱이일 거라고 중얼거리다가, 결국에 약속을 내어주고 달달 뜨거워진 귓불을 식혔다. 이런 스마트하지 못할.
이제는 서 있는 게 힘든 나이, 고스란히 받아들여 빈자리 찾아보았지만 공연장에 경로석이 있을 리는 만무하여 마른 목이나 축이려 바(Bar)앞으로 다가섰다. 오천 원을 주고 국산 맥주를 하나 샀다. 봉긋한 뭇 처녀의 촉촉한 가슴골에 놀라는 마음. 웃지 마라, 정(情)들라. 병뚜껑은 따주셔야죠. 뽕~ 아 웃지 말라니까 웃네. 이제 정이 들 차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사실 이젠 정 들 나이가 아니고 철 들 나이인데. 정 들자 이별이라 뒤통수가 빡!
왔냐! 하는 것은 달새다. 쇼 케이스(Show case)란 게 21세기적 출정식이려면 굳이 오프라인으로 할 것까지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해도 노는 건 라이브가 최고지. 온라인으로 노는 건 지겹기도 외롭기 그지없지 않은가. 야동만으로도 충분히 외로워. 8시라며 맨날 늦게 해. 인사만하고서 오늘 따라 왜인지 햄릿을 닮은 달새는 눈 밖으로 어댄가로 사라지고, 눈 안으로는 이쁜 여자 하나 없어. 엄한 맥주병만 가랑이 사이에 끼고 홀짝이며, 공연 시작하기도 전에 다 마셔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데, 아까운 건 시간들인데, 하다가 담뱃불에 제일 아끼는 바지 태워먹을 뻔. 했잖어?
"그거 알아? 서울에 3대 광장이 금연구역으로 선포된다."
"진짜야?"
"응, 그 행사 알바 하느라 손가락에 동상 걸렸잖아."
귀를 의심해야 무엇하랴. 광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 광장에서! 하긴 어제 들른 극장의 화장실에는 '흡연은 폭력입니다'라는 삐라도 있었다. 쥐방울 달고 말 달리던 시절, 뒷산에서 만난 시뻘건 삐라와 꼭 닮은, 버젓이 거룩하고 경건한 해우소를 침범한 불경스런 그 삐라를 보며 포, 포, 포-폭력이라니. 했었는데. 기어코 올 게 왔구나. 백수가 광장에서 추방되는 삶이란 참 쓸쓸하기만 하다. 느긋하게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 산책하던 고궁의 가을도, 광장의 바람도 잃고 냄새 칙칙 풍기는 허풍쟁이 폭력배가 되어버리는 게로 구나. 역시 취직을 해야 해. 비정규직이라도 고연히 하던 일을 그만두었어. 무슨 대단한 예술을 하신다고. 헌데 흡연이랑 일을 때려치운 거랑은 전혀 상관이 없지 않냐 말이야, 하기에. 누구야?? 하다가 그저 오롯한 씁쓸함을 되씹고 울려나온 심경의 토로임을 깨닫고는 그저 이제 시청 앞 광장도, 청계천 근처와 광화문의 이 순신 동상 앞에서도 느긋한 한 발의 끽연은 불발이로구나. 하다가는, 혹시 현 정부가 선정한 불온단체들의 구성원들이 소문난 애연가들이나 아닌지. 야당의 꼴통 국회의원이 혹은 그 당수가 끽연가인 것이나 아닌지. 아니면 반정부단체 활동을 매번 광장 주변에서 일삼는 시민단체들이 모두들 폭연가(爆煙家)들이나 아닌지. 사회참여도 정치활동도 하지 않고 발언이라고는 고작, 난 투표 안 해! 가 고작이던 일개 클러버(Clubber)로서는 당연히 광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기도 했다. 목에 힘 빠지는 공상은 백해무익한데 말이다.
"그러니까 정치를 하는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졸라 머리 조아리다가 되고 나면 지들 맘대로야. 똑같어, 그 놈이나 그 놈이나. 어쩜 그 무리에는 다른 놈이란 건 못 들어가는 거야. 인증 샷이나 찍고 도망치듯 가버리고, 내가 지원해서 그만큼 된 거라는 애들이 왜 이리 많은 거야? 다 지들이 했데. 그 때문에 누구 배곯는 거는 지들 몫은 아닌 거구. 경쟁력 떨어지게 얻어먹고 붙어먹는 거는 무상급식 받는 애들이 아니구 그놈에 서로 존나게 서로 존경들 하시는 국회의원들이지."
으음, 달변이 부럽기도 하지만 맥주가 찰랑 마지막 방울까지 떨어져버려, 노랑대가리 달변가의 가득 찬 맥주병을 단단히 쥔 왼손이 훨씬 부럽기만 했다. 어디 아는 술이나 없나. 어디 남는 낯이나 없나. 하다가 겨우 벽 앞에 아무도 앉지 않는 노약자석을 발견하고 잰 걸음으로 빈병을 들고 달렸다. 부러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혹은 부끄러움을 봐버려서 그랬는지 땀이 났다. 아이구야 허리야, 앉으니 살 것 같다. 소파 옆 벽에는 'OTL금지'라고 오래되어 때가 뽁뽁 낀 낙서가 그려있다. 이런! 좌절이 금지된 지도 오래전 일이로구먼. 밀실에서는 좌절이 금지되고 광장에서는 흡연이 금지되고 오로지 허가된 것은. 듣기에도 무척이나 거북스러운 그것은. 아마도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