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甫竪 一日橫
8
결국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면 많은 사람들은 수긍할 것이고 그것이 진심으로 들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칠 것이다. 사람들은 솔직함과 진실이 만드는 거짓말에 열광했고 늘 그래왔다. 이보는 거짓말이 하고 싶어져서 거짓말을 하겠다고 생각이 들어섰다. 진심이 담긴 거짓말이란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성큼 들어선 말에 이보는 전주가매 황태를 보고 너무 말라있구나 하며 앞에 앉은 G선배에게 투정을 부렸더니 이건지 뭐 몰랐다는 겐가? 한다. 이보가 전주에서 먹은 거라고는 콩나물 국밥뿐이었다. 이보만큼이나 물기 없는 황태를 찢으며 근데 어제 먹은 건 낙타고기였는데 했다. 물론 G선배는 영문을 몰라 했고 이보는 설명하고는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전작이 있음에도 이보는 몇 사발의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냥 술이 고팠던 거구나?”
G선배는 이보의 낯빛을 한동안 살펴 읽다가 말했다.
“궁금했어. 요즘 소설들의 취향이나 올해 나온 물건들의 냄새랄까. 그런 게.”
“작년보다는 힘이 딸리는 거 같어. 상황도 그렇고 출판 쪽도 땐땐하고. 쉽지 않지 뭐.”
“책은 좀 팔려요?”
“출간지원 받지 못한 것들은 모두 적자야.”
“내년 전망은?”
“그런 게 뭐 똑같지. 두 개 기획하고 있는데 하나는 난관이고 하나는 그럭저럭 진행은 하는데 규모는 작아질 거고.”
주점 고다르에서 소설 길드의 송년회는 선물 주고받기 게임으로 시작되었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이보는 회비 만원을 내고 작은 번호표를 받아들었다. 멋쩍은 헛웃음으로 준비하지 못한 선물을 대신하고서 어설픈 인사를 주섬주섬 챙기며 끄트머리 자리에 앉았다. 번호표에는 99가 쓰여 있었다. 아까 문자를 보냈던 E와 G선배 모두 와 있었고 이보는 G선배의 앞에 앉았다. F도 있고 사막에서 만났던 H도 수염을 깎고 건너편에 있는 게 보였다. 이보는 도무지 선물 주고받기 게임이라는 게 재미가 없고 지루하고 누구에겐가 줘야할 선물이라고는 준비하지를 못해서 연실 제 술을 따라 마시기만 했다. 모두 낯이 익고 푸근한 이들임에도 이보는 낯설은 얼굴이 그립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육십...육번? 66번입니다. 없습니까?”
낯이 설은 얼굴이 낯설은 웃음과 낯선 눈빛과 낯선 몸이 보고 싶었고 이보는 날설어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노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려 담배를 껀내 입에 물었다.
“이보는 몇 번이오?”
참도 낯설은 질문에 잠깐 대답을 찾던 이보가 아까 나눠준 꼬리표를 뒤적이며 99를 떠올렸다.
“아, 99번이죠.”
“어? 진짜? 99번은 없는데.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어. 어디 좀 봅시다.”
이보는 꼬리표를 내밀었다. 비밀을 들켜버린 것처럼 웬일인지 이보는 민망하고 바보 같아졌다.
“이건 66번이야. 이런 선물을 놓치셨군.”
“내 선물이 싫었던 거로군.”
“아하........이런.” 이게 아닌데.
이보의 번호표는 분명 66번이었다. 이보는 확실히 거꾸로 읽어버리고 거꾸로 믿어버린 탓에 선물도 놓치고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고 재미도 없는 이 놀이에 얽혀버려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뭔가 거대한 음모에 빠져 물구나무를 선 꼴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아, 이보는 이대로 길드의 인질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명랑한 변명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잔을 채우기만 할 뿐이었다. 이런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이보는 낯설어져 버린 것이다. 낯설다. 이런 거 낯설어. 제길헐. 결국 낯선 그리움이란 게 이보의 몫이었단 말이로다. 이보는 뻐끔홀짝 담배를 비벼 끄며 쓸쓸해져버렸다. H가 환한 얼굴로 다가와 솥뚜껑 닮은 손으로 이보와 악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보는 빼꿈훌쩍였을 지도 모른다. 18번을 쥐고 있던 K선배는 받은 선물을 이보에게 건넸다. 은하수란 제목에 라벨이 붙어 있는 검은 장갑이었다. 은하수와 검은 장갑이 다시 낯설어졌다.
이보는 아까 핑크 패딩을 입고 소리를 치던 여자가 섰던 계단입구에서 M과 담배를 피우고 난 뒤 후배 S의 입영소식을 듣고 화장실에 다녀온 이보는 자리에 코트를 주섬이며 떠날 채비를 하였다. 마침 G선배도 일어섰고 둘은 막걸리 한 사발을 더 하기로 하였다.
“아마 ‘월계동’이 잘 팔리면 그 다음 것들이 좋지. ‘유산일기’도 ‘망보기’도 그전에 있고 결과를 모르니까. 반응이 괜찮으면 후속이 탄력 받는다.”
결국 팔아야 산다. 팔리지 않는 소설이란 대체 무엇이 되는 것일까?
이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전주가매 황태를 찢어 놓았던 접시에 올라선 어쩐지 익숙하고 친근한 움직임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낙지였다. 꿈틀꿈틀 낙지는 사지가 찢어진 채로 접시 위를 버둥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접시에 있던 황태는 이놈이 다 먹어치웠는지 없어져버리고 낙지란 놈은 물기를 잃었음에도 젖어있었고 황태를 삼킨 놈은 보아 구렁이 보다도 갑작스럽게 낯설었다. 아니면 이보의 뱃속에서 낙타고기를 소화한 낙지가 이보의 똥구녁을 빠져나와 그 순결한 변기를 화이트 홀로 삼아 한걸음에 이보를 쫒아 여기 막걸리 집에, 혹시 전주가매 황태로 둔갑하였다가 이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찍찍 검은 먹물을 뿜으며 검은 눈을 똑바로 쳐들어 이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필 G선배는 이 때에 화장실을 가버렸다는 말인가. 이보는 알리바이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양 도와달라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 탁자 위를 꿈들 대는 낙지들에게 이미 그들의 몸을 허락하고 있었다. 이런.
대체 이보는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그저 이보는 낙지의 마지막 숨결에 집중해 보려 노력해 보았다. 뭐라구? 그 말을 그 숨결을 알아듣고 싶고 그럴 수 있다면 하는 맘으로 낙지에게 다가가 귀 기울여 낙지를 보았다. 찍지익~ 낙지는 작은 거품을 만들어 토하고 숨을 멈추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이보는 끝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던 거다.
낙지와의 교신은 불통이었다.
“갈까? 졸린 거 같은데.” 어느새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는 이보에게 G선배가 다가와 서 있다.
“응? 그래요.”
계산을 하러 G선배가 가방을 들고 간 사이 이보는 숨이 넘어간 낙지를 보다가 휘리릭 낙지 대가리를 입속에 감추었다. 오물오물 빈 어금니 사이로 낙지는 미끄러져 들어갔고 그 맛은 꼭 황태 맛이었다.
“뭘 그렇게 맛있게 먹냐?”
“응? ...낙...지요.”
늘씬한 멸치 한 마리가 이보를 올려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크크킄, 취했냐?"
이보도 슬쩍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 해산물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밖은 추웠고 내일은 더 추울 거라고 G선배는 휴대폰을 읽으며 세상에 숨겨진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아래서 이보는 그저 오늘의 해산물이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보에게 시비를 거는 것인지 그것이 맘에 걸렸다. 일종의 신호인 건지? 그것이 알고싶었다. 휘릭! 갑자기 G선배는 이보의 등을 후려친다.
“화이팅.”
“으응? 응...화이...”
목에 걸려 내려가지도 올라오지도 못하던 황태 맛의 낙지가 쪼르르 이보의 허한 배속으로 미끄려져 들어간다.
연말에 택시를 잡는 일은 신의 뜻이다.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가하는 형벌이다. 미끄러지는 택시 안에서 이보는 배가 갑자기 살살 말할 수 없이 아파왔고 무엇인가 자꾸만 목구멍으로 넘어오려고 해서 침을 골깍꼴깍 삼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이마를 시린 차창에 대고 창밖을 보며 있는데 영문도 모르는 G선배는
"졸리냐"고 두 번 물어보았다. 이보는 졸린 게 아니라고 역시나 두 번을 대답했다.
경복궁 앞에서 먼저 내린 이보는 괄약근을 진심으로 조이며 한 손으로 입을 막고 G선배와 각자의 남은 손을 흔들었다. 막차라고 붙은 버스를 고르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탔다. 버스란 자고로 어디까지는 가는 법이니까. 그저 이보는 온전한 정신을 잃지 않고 그것이 새어나오지 않기를 괄약근에게도 목구녕에게도 부탁을 하며 간절히 온 힘을 모아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명년 역시나 혁명은 지연될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은 정보의 공유는 깜짝 놀랄 일들의 홍수에 재미를 지속하게 될 테고 혁명을 지연시킨다. 그건 상수동에 홍수가 나는 류(流)의 코메디다. 혁명은 도태되지 않는 정도에서 정보를 갈아타야 할지도 모른다. 이건 풍(風)도 없는 그냥 비극이다. 이보는 막차를 탄 것이지만 이보는 또 한 번 갈아타야만 한다. 그건 이보만의 비극이며 타인들을 위한 희극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괄약근이 풀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입을 잘 조여야한다. 아이러니가 창궐한다. 가야할 길을 아직 정신이 남은 이보는 잘 기억하고 있다. 버스가 많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보는 끄응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모아 파이팅을 했다.
누가 그랬지? 속도가 높아질수록 갈 길은 멀기만 하다고. 참 빌어먹을 놈이 분명하다. 근데 저 앞에 돌아가는 것은 풍차(風車)가 아니던가? 바람이 검은 하늘에 흰구름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대로 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