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甫竪 一日橫
7
이보는 들리지도 않는 존 케이지의 ‘소나타와 간주곡’을 들으며 아파 오는 어금니에 잔뜩 인상을 구기고 짧은 바람을 들이마시며 섰다. 아마도 아픈 것은 이빨이라기보다는 잇몸에 가까운 모양이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퉁퉁 부운 잇몸을 만져본다. 동그란 혹이 생겨버렸고 탱탱하게 팽창해 있었다. 2년 전에 아래쪽 어금니를 빼고 새로 해 넣지 않은 탓일 거라고 해서 윗니들이 흘러내려오고 자리를 잡지 못하며 흔들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이보의 이빨과 잇몸은 약해져버려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통증이 왔다는 것이 앞으로도 일주일간은 지속되리란 것쯤을 이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일쯤 퉁퉁 불어버린 잇몸을 손가락으로 콱 눌러 터트려버려야겠다고 진단했다. 피가 쏟아지고 누런 고름이 나올 거였다. 그것은 잇몸의 눈물이었다고 이보는 매번 고름 가득한 잇몸을 터트릴 때마다 피를 흘리는 입가를 보며 씁쓸한 피 맛을 보며 떠올렸었다.
병원에 가기는 해야겠지만 항상 뒤늦은 후회였고 이는 결국 뽑혀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잠시 이보는 썩어가는 이빨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했다. 약국에 들러 진통제라도 사야할 모양이다. 아까 지나온 약국을 향해 몸을 틀었을 때 이보는 미끄러졌고 잠시 공중에 두 발을 올렸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꽈당. 왼쪽 골반이 너무 아팠다. 이런 진통제 같으니라고. 약국을 포기하고 바로 고다르로 향했다. 진통은 더 큰 진통에 잠시 수그러졌다. 존 케이지가 짓지 못한 존 케이지의 마태수난곡이 이보의 귀 안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고다르로 걸음을 겨우 옮기며 이보는 거짓말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거짓이라는 말만 생각이 났다가 바로 말이 따라 붙었다. 왜였는지 그냥 떠오른 거짓+말을 이보는 이마에 쓰고 고다르도 고난을 겪었다는 고달픈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너는 아니라고 했다. 헌데 궁금해진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말 뒤에 말하지 않았던 그 감정이었다. 아닌 것은 아닌 대로 좋다. 인정하겠다. 헌데 그 감정도 그야말로 ‘아닌’ 것이냐. 너는 그 일을 그렇게 결론지었지만 너의 마음은 너의 감정은 너의 몸은 그들도 역시 아니라고 하는가? 아니라고 느끼는가? 그 말 뒤에 숨어있는 스스로 감춰버리고 감금시킨 감정의 덩어리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진심이냐고.
이보는 대뜸 이건 조금 도발적이군. 마치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고르려던 여자의 옷을 벗기고 간음을 시도하는 질문이라고, 했던 말을 도로 담고 싶어진 것이다. 헌데 이 생각은 어쩐지 한번은 꿈에라도 품어본 생각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이보는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간음을 꾸고 있단 말인가? 이건 아무래도 이보스럽지 않다는 생각 끝에 지우개를 꺼내 그 생각들을 빡빡 밀어 지워보았다. 그래도 묻고 싶은 물음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그게 누구에게 한 질문이었는지는 너무도 확실하고 아득하게 지워져버렸던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이 계단 아래서는 한 여자가 외치고 있었다. ‘빨리 꺼져라. 이 미친 천벌을 받을 쌍을 떨고 지랄이냐. 빨리 꺼저라잉.’ 주점 고다르의 현관문 앞에서 분홍 패딩을 입은 한 여자가 벽에 기대어 전화를 하고 있었고 이보의 기척을 들었는지 여자는 몸을 돌려 벽에 밀착했다. 이보는 물론 여자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없었고 그 여자의 말이 이보의 지워진 생각을 꼬집기도 해서 그저 고다르의 문을 열고 시끄러운 실내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들고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