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

이보슈, 오늘은 꽝일세

異甫竪 一日橫

by Inan Son

6

H대학으로 향하는 세 자리 숫자의 파란 버스 안에서 이보는 불현듯 자신을 붙들고 있는 지구의 중력이 지겹고도 지겨워졌다. 바로 그 놈에 중력이라는 무겁고 중심적이고 근원적인 힘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져 버린 것이다. 그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뛰어오르기에 이보는 충분히 운동부족이거나 날아다니기에 너무 무겁게 자라버려서 이도저도 못한 채로 땅에 발붙인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땅에 발을 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린 마찬가지야. 버스가 휘어진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터널의 벽은 더러웠고 등은 호박색이었다. 터널은 길지 않았고 버스는 다시 어둔 하늘 아래로 뛰쳐나와 고가도로 위를 달렸다. 고가아래의 불빛들을 보며 차라리 날고 있는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보는 사실 가벼워지고 싶었던 것이고 가볍지 못한 것이었다.

해서 이보는 새가 부러워지고 바람과 구름이, 하늘을 떠오르는 공기들과 먼지들이 탐이 나기도 했던 거다. 차라리 조각이나 파편이기를, 혹은 증류되어지는 물이거나 설령 추락이라도 해야 한다면 안개거나 비거나 눈이라지. 쳇, 거추장스럽게 인간이라니 하필이면 인간이라니. 뭐니! 하는 생각 따위가 그만 이보의 입 안 가득 볼메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입 밖으로 나올 바람이 탄식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새의 울음이 되거나 몰려오는 구름을 밀어 올리는 거대한 바람이거나 식은 산(山) 위에 조용히 떨어지는 눈의 소박한 착륙음이 되기를 바래보았다. 어쩌면 이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배회하며 바람을 늘리는 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보 안에 일어서는 생각들이나 말들 혹은 저 아랫녘에 짧은 생 고무줄을 육봉(肉峰)으로 변화시키는 내 안에 모든 바람들을 키우고 늘리는 것이 진정한 혁명일 지도 모른다고 겨우 고작 그 따위 정도일 그런 환상을 품은 작고 늙어가는 아해(兒骸)일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구름을 몰고 파도를 세우는 바람이란, 지구라는 거대한 별의 내부에서 생겨난 혹은 작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힘이니까 이보도 키 작은 이보 안에서 이 거대하고도 막대한 몸뚱이 안에서 바람을 키우고 늘리는 것은 이보에게만은 역시나 혁명적이고 즐거운 회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헌데 간밤에 먹은 것은 낙타고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버린 것은 이보의 기억 속에서 낙지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었다. 피식, 바람이 분다.

버스는 어느새 또 한 차례의 터널을 뚫고 지나왔고 씩씩 이며 내리막을 달리고 있었다. 얕은 산을 양옆에 낀 도로는 환했지만 그 웃음은 쓸쓸했고 황망했다. 좌회전에 시달리는 신음이 파란 버스 바깥으로 나갈 듯이 승객들의 다문 입 사이에서 터져 나왔고 고통을 외면한 버스는 어느새 신년(新年)처럼, 가끔씩 되풀이되는 역사처럼 H대학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보는 버려지듯이 하차했다. 어느 길 어느 집 어느 풍경을 비웠던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이라고 말하며 이곳에 모였다. 길보다 환한 골목들의 미소는 흥청였고 출렁였고 이보는 그 물결을 얻어 타기만 해도 걸음이 옮겨지는 신기를 경험했다. 거대한 물결은 용이 되어 골목을 삽입하고 들어섰고 이보는 그 용의 비늘 한 조각이라도 되어버린 꼴로 골목을 미끄러져 올랐다. 이쪽이 맞는 건지 비늘은 알지 못한다. 혹은 비늘에게도 자격이 있는 것인가? 파편으로 변신한 이보는 자신의 행보를 전망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불안한 쾌락이었고 일종의 불륜이었다. 늘씬한 지느러미가 되지못한 비늘의 탄식에 용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영문인지 이보는 그제야 제 몸을 돌려 이보의 길을 전망해 보았다. 그 곳은 횡단을 준비하는 보도였고 신호는 몹시도 붉었다.


잠깐만. 기다리는 동안 저 앞에 고개를 숙이고 뭔 꿈이라도 눈 뜨고 꾸듯 걸어오는 이는 D가 아니던가? 실로 D로 보이기도 보였다. 이런 필연이 우연히도 있다? 이보는 비늘에서 빠져나와 혹은 용에게서 버려져 다시 이보가 되어버렸다. 헌데 고구마를 닮은 토마토의 D는 지금쯤 화란에 있어야 맞다. 무슨 담이라던 도시에서 취직을 하였다는 갈매기의 전언이 있었는데 그 D가 어찌된 까닭으로 H대학 앞을 꿈꾸고 있는가. 닮은 사람? 아니다 저런 얼꼴(骨)을 닮기는 몹시도 어려웁다. 이보는 D를 닮은 D일 지도 모르는 꿈꾸는 이에게 다가가 꿈꾸는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았다. 오! D가 맞다.

“아니 어쩐 일인가?”

“아니 이보게나, 자네 이보 아닌 거?”

“어디 가는 거?”

“응 좀 걷고 있던고.”

“그럼 차나 한잔하고.”

“그럴꼬?”


이보와 D는 급한 대로 다방을 찾아 들었다. 커피를 사며 D는 자기가 취직을 하였으니 자기가 사겠단다. 이보는 꺼내었던 빈 지갑을 소리 없이 넣으며 그러시게 했다.

벌써 6년. D가 토마토도 고구마도 아닌 D이기를 소원하며 화란의 어느 담에 들어갔던 게 벌써 그리도 되었단다. D는 빙낭(氷囊)에서 주섬주섬 최근의 일거리들을 꺼내어 이보라는 듯 보여주었고 이보는 신기한 듯, 우와~를 연발하며 D의 발명을 감상해보았다.

엄지 한 마디 크기의 장수풍뎅이를 두 개 꺼낸 D는 이 전자풍뎅이들이 서로 교신하면서 어떤 소리를 만드는 거라고 설명했다. 일일이 D가 스스로 땜질을 하는 거라고 했고 이보는 D의 땜질 실력에 적잖이 놀랐다. 깔끔한 마무리의 땜질이었다. D는 화란에서 기계공학을 독학하였고 무슨 재단에서 이런 전자풍뎅이들을 만들고 키우고 있다고 자신이 만든다는 벌레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보에게 친절한 설명을 하였다. 이보는 알 수없는 원리를 뒤로하고 그저 신기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한참이나 D의 말과 풍뎅이들에 빠져버렸다.

“아~ 그러니까 이놈들을 교미 시키는 거구나.”

“뭐 그런 셈이지.”

“그 교미할 적에 생기는 소리를 들려주는 거?”

“무작위적인 계획 같지.”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른 잠재적으로 약속된 무작위한 소리의 발생.”

“놀이 같은.”

“농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멋진데. 진지한 농담.”

“심각한 놀이.”


D만큼 뭔가 보여줄 것이 없던 이보는 그저 근황을 장황하게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이보에 의해 이보가 처한 이보의 상태를 대신했다. 감정놀이를 하고 있다고 감정이 바뀌는 것에 따라 행동에 변수가 생기는 것을 즐겨보려 한다고 그나마 이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학적으로 말해보았다.

“그래 해야 돼.”

잔잔한 불륜이라고, 뒤바뀐 육체라고, 항문이 먹는 말과 입이 배설하는 목숨이라고 했다.

“그건 아무래도 꼭 해야 하는 일 같다. 좋은데.”

“좋아?”

“좋네. 불륜이란 건 아무래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

“해야지?”


예술이란 뭐 일종에 불륜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마치 D가 만든 전자풍뎅이의 유혹적인 교미음 놀이도 역시 뭔가 불륜의 시작인 거라고 이보도 D도 아무도 말하지는 않았다. 뭐라는 거냐?

“해서 한 번 해보려구.”

“해야 돼. 복잡해지는 게 필요해.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복잡해지는 거지. 그러다보면 사물의 상태, 지금의 상태를 다시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렇군 그래.”

“그럼. 채워지지 않는 걸 채우려는 게 아니고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가벼운 웃음이나 가벼워지는 정서가 절대로 필요해. 그게 좋은 거지.”

“복잡하지만 가벼워진다.”

“응, 만지기만해도 좋은 거지.”

“만져야 좋은 거다. 닿지 않음 괴로워. 나두 해볼래. 할거야.”

“의지를 가져야 해.”

“의지를 갖고.”

“실행에 옮기는 거야.”

“행동으로의 전염.”

“복잡해지는 거지.”

“가볍게.”

이보는 그만 D와의 말장난이 심각하게 즐거웠다. 이 정도로 심각했던 적이 이보에게는 적잖이 기억에도 나지를 않아서 두 사람은 가벼워져 가기만 갔다.

결국 D는 발명가가 되어 전자풍뎅이를 만들고 두 개의 풍뎅이에 접을 붙이고 그 풍뎅이들의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숫자로 프로그램하고 그 숫자들을 증폭해서 공명하고 듣는다. 이야~ 몇 번의 불륜이 그 안에 들어있는 건지 초당 몇 회의 떨림이 존재하는 것인지 몇 차례의 연산이 사정되어지는 건지 이보는 잠시 손가락을 펼쳤다가는 도로 접어 버렸다. 하나의 궤적 하나의 파동 하나의 주름이 이보 앞에서 축을 달리하며 춤을 추었고 D의 광대(廣大)한 미간(眉間) 사이에 좁은 그래프를 펼쳐 놓았다. 축간 거리를 재지 않아도 언젠가 그 선들은 한 곳에 모일 듯이 보였다. 미간은 넓고 선들은 가볍게 변하고 있었고 그것은 변화의 반복이며 반복의 지속이었으니까.


“이거 봐.”

D는 다방을 나오며 손 전화를 이보 앞에 들이민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D는 애인에게 온 문자를 보이며 가벼웁게 웃어보였고 이보에게는 부러웁게 즐거워도 보였다.

“자랑하는 거냐?”

“응.”

이보와 D는 다방 앞에서 빨간 담배를 서로 한 개비씩 뽑아 피우고 각자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너는 이쪽으로 나는 저쪽으로 하며 손을 흔들어 헤어졌다.


다시 주점 고다르로 향하는 고달픈 언덕을 걸으며 이보는 D의 광대한 미간 사이에 그려진 그림은 하나의 소리였던 거라고 서로 멀어지는 D와의 거리만큼 멀어지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고 있었다. 그 때 이보의 귓속에로 들어 온 한마리의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일정한 간격으로 신호를 보내었고 그 신호에 따라 이보의 염두도 조금은 따뜻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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