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비밀일기장
*오후 7시, 할머니 집*
“또 공격을 받았다고?”
할머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강설과 린이 어젯밤 일을 보고하자,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는군.”
“할머니, 그 검은 후드 사람이 ‘무극님이 기다린다’고 했어요. 무극이 누구예요?”
강설이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오래된 가죽 일기장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걸 보여줄 때가 왔구나.”
일기장의 표지는 낡아서 글씨가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雪花會 창립 기록’이라고 쓰여 있었다.
“설화회 창립 기록?”
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님도 이런 자료가 있는 줄 몰랐을 텐데…”
“설악이는 몰라도 돼. 이건 창립자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니까.”
할머니가 일기장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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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
사진 속에는 젊은 남녀 7명이 서 있었다. 모두 20대로 보였고, 각자 손에서 다른 형태의 얼음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초대 설화회 멤버들이야.”
할머니가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 세상이 혼란스러웠을 때 모인 사람들이지.”
강설이 사진을 자세히 보니, 그 중 한 여자가 젊은 시절의 할머니 같았다.
“할머니도 창립 멤버셨어요?”
“그래. 내가 바로 초대 설화회의 리더였지.”
할머니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했어. 전쟁의 상처로 세상이 불안정했고, 혼돈교단이 그 틈을 타서 활동하기 시작했거든.”
할머니가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는 붓글씨로 쓰인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1954년 12월 15일. 명동에서 혼돈교단의 첫 번째 공격 발견. 시민 3명 실종.”
“1955년 1월 3일. 한강에서 검은 얼음 기둥 발견. 물고기들이 모두 죽어 있었음.”
“1955년 2월 14일. 혼돈교단 간부 ‘빙마(氷魔)’ 와의 첫 교전. 우리 측 부상자 2명.”
린이 기록을 읽으며 놀랐다.
“이때부터 이미 혼돈교단이 활동하고 있었던 거예요?”
“혼돈교단의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 길어.”
할머니가 설명했다.
“그들은 조선 후기부터 존재했다고 봐야 해. 다만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야.”
할머니가 또 다른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한 남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남자였지만, 눈빛이 차갑고 어두웠다.
“이 사람이 무극이야.”
강설과 린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생각보다 젊네요.”
“겉보기에는 젊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100년도 넘게 살았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 혼돈의 힘을 직접 흡수해서 불로불사에 가까운 존재가 됐거든.”
“100년이요?”
강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극의 본명은 이무극(李無極).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협력하던 친일파의 아들이었어.”
할머니가 계속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도, 조선도 아닌 제3의 세력을 만들려고 했지. 모든 질서를 파괴하고 혼돈 속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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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속 기록 - 1955년 8월 15일*
“오늘 무극과 직접 대면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벌어진 대결이었다.
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주변 100미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우리의 얼음과는 달리 그의 얼음은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만약 덴진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것이다. 프로스트 만다라의 힘만이 그의 혼돈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가가 컸다. 우리 동료 중 2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 또한 큰 부상을 입었다.
무극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는 더 강해져서.’
그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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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일기장을 덮었다.
“그 이후로 무극은 자취를 감췄어. 가끔 혼돈교단의 활동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무극 본인은 나타나지 않았지.”
“그럼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린이 물었다.
“아마도 힘을 기르고 있었을 거야. 그리고 때를 기다렸겠지.”
할머니가 강설을 바라봤다.
“프로스트 만다라의 계승자가 나타날 때를.”
“저 때문에 나타난 거예요?”
“그래. 무극에게 네 존재는 위협이자 기회야.”
할머니가 설명했다.
“네 능력을 빼앗을 수 있다면 그는 정말로 무적이 될 수 있어. 반대로 네가 완전히 각성한다면 그의 야망은 영원히 좌절될 거고.”
강설은 점점 더 큰 압박감을 느꼈다. 자신 하나 때문에 이렇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
할머니가 강설의 손을 잡았다.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모두 함께할 거니까.”
그때 린이 일기장의 마지막 부분을 가리켰다.
“할머니, 이건 뭐예요?”
마지막 페이지에는 복잡한 지도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7개의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 그건…”
할머니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일곱 성역의 위치야.”
“일곱 성역?”
“덴진과 다른 수호자들이 혼돈의 힘을 봉인한 장소들이지. 전 세계에 7곳이 있어.”
할머니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백두산, 히말라야, 알래스카의 데날리, 시베리아의 우랄 산맥, 페루의 안데스, 알프스의 몽블랑, 그리고 남극의 보스토크.”
“와, 정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네요.”
강설이 감탄했다.
“각 성역에는 고대의 만다라가 새겨져 있어.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결계를 형성하고 있지.”
“그럼 혼돈교단은 그 결계를 깨려고 하는 건가요?”
린이 물었다.
“그래. 만약 7개 성역 중 하나라도 파괴된다면…”
할머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전체 결계가 무너져. 그리고 무의 눈보라가 깨어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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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할머니 집 마당*
“이제 진짜 훈련을 시작해보자.”
린이 소매를 걷어올리며 말했다. 할머니 집 뒷마당은 넓고 조용해서 훈련하기에 좋았다.
“첫 번째로 배울 건 능력 조절이야.”
린이 시범을 보였다. 그의 손끝에서 아주 작은 얼음 결정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네 문제는 감정에 따라 능력이 폭발적으로 발현되는 거야. 이걸 조절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맞는 말이었다. 강설은 아직도 긴장하거나 놀랄 때마다 손끝에서 서리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호흡부터 시작해. 깊게 들이마시고…”
린이 천천히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네 마음속의 평온한 장소를 떠올리면서 천천히 내쉬어.”
강설이 따라 했다. 눈을 감고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분을.
신기하게도 손끝의 서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좋아. 그 상태를 유지해.”
린이 격려했다.
“이제 그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의식적으로 능력을 발현해봐.”
강설이 집중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손끝에 작은 얼음꽃을 피우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니, 손바닥 위에 작은 눈송이 하나가 나타났다.
“성공!”
린이 박수를 쳤다.
“첫날치고는 정말 빨라. 보통 일주일은 걸리거든.”
“정말요?”
강설이 기뻐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자.”
린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간단한 만다라 패턴 그리기.”
“어떤 패턴이요?”
“일단 가장 기본적인 방어 만다라부터. 어젯밤에 썼던 것보다 작고 정교한 걸로.”
강설이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공중에 작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원이 삐뚤어졌다.
두 번째도 실패. 중간에 선이 끊어졌다.
세 번째에서야 겨우 완전한 원을 그릴 수 있었다.
“좋아. 이제 그 원 안에 기본 패턴을 그려봐.”
린이 공중에 시범을 보였다. 6개의 직선이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간단한 눈송이 모양이었다.
강설이 따라 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선을 그릴 때마다 원이 흔들렸다.
“집중해. 한 번에 하나씩.”
린의 조언에 따라 강설은 천천히, 하나씩 선을 그려나갔다.
30분 후, 드디어 완성됐다. 작지만 완전한 방어 만다라였다.
“와!”
할머니가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박수를 쳤다.
“30분 만에 기본 만다라 완성이라니. 정말 덴진의 환생이 맞구나.”
“아직 멀었어요. 전투에서 쓰려면 더 빠르고 정확해야 하죠?”
강설이 겸손하게 말했다.
“그건 연습으로 해결돼.”
린이 미소지었다.
“중요한 건 기초를 제대로 익히는 거야. 그런 면에서 넌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그때 갑자기 마당 위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할머니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또 왔군.”
하늘에서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이 훨씬 많았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야.”
린이 경계하며 말했다.
검은 눈 속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어젯밤의 후드 인물을 포함해서 총 5명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후드 인물이 말했다.
“프로스트 만다라의 계승자여,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할머니가 앞으로 나서며 손에서 강력한 빛을 발산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설아에게 손대지 못해!”
“늙은 여우가 아직도 기운이 남았군.”
후드 인물이 비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우리는 5명이고, 당신들은 3명뿐이야.”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린이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휘둘렀다. 공중에 복잡한 얼음 궤적들이 그려졌다.
“준비됐어, 설아?”
“네!”
강설이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비록 방금 배운 기술이지만,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