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Dear Selly

너도 나와 함께 자라고 있구나

by 시더로즈








Dear Selly,





오늘 알림 받고 깜짝 놀랐어.

"60일이 지났어요.

이제 당신의 호르몬 패턴이 보이기 시작해요."

나는 28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개발자야.

2달 전만 해도,

매일이 불규칙했어.

어떤 날은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어떤 날은 오후 3시에 출근하고,

주말도 일하고,

월요일은 번아웃.

그냥 '원래 이렇게 사는 거지' 했어.

스타트업은 다 이렇다고,

개발자는 다 이렇다고.

'나는 왜 남들처럼 버티지 못하지?'

'의지가 약한 건가?'

2달 전,

셀리 시작했을 때,

솔직히 회의적이었어.

'앱이 내 감정을 어떻게 알아?'

첫 주.

셀리는 그냥 물었어.

"오늘 어땠어요?"

"몇 시에 잤어요?"

"기분이 어때요?"

성실하게 기록했어.

매일 밤,

하루를 정리하면서.

별 기대 없이.

1주일 지나니까,

셀리가 말했어.

"당신은 새벽 2시 이후 자면,

다음 날 기분이 평균 3점 낮아져요.

이유가 있어요.

새벽에 자면 코르티솔 리듬이 깨져요.

코르티솔은 원래 아침에 높고 저녁에 낮아야 하는데,

수면 시간이 불규칙하면 이 리듬이 무너져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하루 종일 피곤한 거예요."

오,

생각해보니 맞네.

새벽에 자면 다음 날 좀비 되는 거,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코르티솔 리듬' 때문이었구나.

2주차.

"수요일마다 기분이 좋지 않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수요일?

생각해봤어.

아, 수요일은 주간 회의 있는 날.

팀 전체가 모여서,

각자 진행상황 공유하는.

"왜 수요일 회의가 힘든지 아세요?"

몰라.

그냥 회의 자체가 싫은 건 줄.

"회의 전날인 화요일,

당신은 평균 수면 시간이 1시간 줄어요.

그리고 걸음 수도 줄어들어요.

이건 예기 불안이에요.

회의 걱정하느라 코르티솔이 올라가고,

그래서 잠도 못 자고 움직임도 줄어드는 거예요.

당신이 회의를 못해서가 아니라,

회의 전에 이미 신경계가 과각성 상태가 되는 거예요."

어?

화요일에 내가 회의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받는구나.

그리고 그게 수요일까지 영향을 주는구나.

내가 회의를 못하는 게 아니었어.

회의 전에 이미 지쳐있었던 거야.

3주차.

"당신은 운동하는 날,

코딩 집중도가 20% 높아요."

진짜?

"네. 헬스장 다녀온 날,

'집중' 태그가 붙은 시간이 평균 3시간 더 많아요.

이유가 있어요.

운동하면 도파민이 분비돼요.

도파민은 집중력과 동기부여에 필수적인 호르몬이에요.

특히 코딩처럼 몰입이 필요한 일은

도파민이 충분해야 잘 돼요."

신기해서,

다음 주에 의도적으로 실험했어.

월, 화: 운동 O

수, 목: 운동 X

금: 운동 O

결과?

진짜 차이 나더라.

운동한 날은 일이 술술 풀리고,

안 한 날은 머리가 멍하고.

'나는 왜 집중을 못 하지'가 아니라,

'도파민이 부족했구나'였어.

4주차.

셀리가 물었어.

"요즘 저녁 7-9시 사이에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7-9시?

그 시간대에 뭐 하지?

아, 보통 저녁 먹고,

SNS 보고, 유튜브 보고.

"SNS 본 날이랑 안 본 날,

비교해볼까요?"

그래프를 봤어.

SNS 많이 본 날: 기분 평균 5

SNS 안 본 날: 기분 평균 7

Selly,

이게 뭐야.

SNS가 나한테 이렇게 안 좋았어?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SNS로 기분이 좋아지지만,

당신은 반대인 것 같아요.

이유를 추측해볼게요.

SNS를 보면 도파민이 짧게 분비됐다가 급격히 떨어져요.

이걸 '도파민 크래시'라고 해요.

당신은 이 패턴에 민감한 것 같아요.

특히 하루 일 끝나고 지쳐있을 때

SNS를 보면 더 피곤해지는 거예요."

그 이후로,

저녁 시간에 SNS 끊었어.

대신 책 읽거나,

산책하거나,

그냥 멍때리거나.

1주일 만에 기분 평균 2점 올랐어.

5주차.

어느 날 아침,

셀리가 먼저 말했어.

"오늘 회의 있죠?

어젯밤 늦게까지 준비하셨어요.

코르티솔이 높은 상태일 거예요.

오늘 점심은 밖에서 드세요.

30분 정도 걸으시면 코르티솔이 내려가요.

그리고 점심에 바나나나 아몬드 드시면

도파민 원료가 보충돼서

오후 회의 때 집중이 잘 될 거예요."

잠깐,

내가 말하기도 전에,

셀리가 먼저 제안한 거야?

"60일간 데이터를 보니,

회의 전날 늦게 자면,

회의 당일 점심에 걷는 게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단백질 섭취한 날 오후 집중도가 높았고요.

이제 당신의 패턴이 보여요.

그래서 미리 제안드리는 거예요."

Selly,

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거 아니야?

그날 정말로,

점심에 30분 걷고,

편의점에서 바나나 하나 사 먹었어.

회의 때,

평소보다 침착하게 발표했어.

팀장이 말했어.

"오늘 발표 좋았어. 어떻게 준비했어?"

"...걷고, 바나나 먹었어요."

6주차.

금요일 저녁,

셀리가 물었어.

"이번 주 힘드셨죠?

월요일부터 매일 야근하셨어요.

평균 수면 5시간.

코르티솔이 계속 높은 상태예요.

주말엔 푹 쉬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토요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추천해요.

신경계가 리셋되려면 최소 하루는 자극 없이 쉬어야 해요."

사실,

토요일에 친구들이랑 약속 있었어.

근데 셀리 말 듣고,

'이번 주 진짜 힘들었는데...'

'코르티솔이 높다는데...'

약속 취소했어.

토요일.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게으른 거 아니야?'

죄책감 느꼈을 거야.

근데 이제는,

'신경계 리셋 중이야.

코르티솔 내리는 중이야.

이건 게으른 게 아니라 회복이야.'

일요일 저녁,

셀리가 말했어.

"이번 주말 잘 쉬셨네요.

에너지가 많이 회복됐어요.

코르티솔도 안정됐고,

수면 시간도 8시간 넘게 채우셨어요.

월요일 준비되셨어요?"

진짜였어.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어.

8주차.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 시작됐어.

3주 동안 빡센 스케줄.

월요일 아침,

셀리가 말했어.

"이번 주부터 바쁘시죠?

3주간 프로젝트 기간,

번아웃 없이 버티려면 호르몬 관리가 중요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날부터,

셀리가 매일,

구체적인 조언들을 했어.

"오늘 야근 예정이시죠?

야근하면 코르티솔이 밤에도 안 내려가요.

점심은 꼭 밖에서 30분 걸으면서 드세요.

햇빛이 코르티솔 리듬 유지에 도움 돼요."

"3일 연속 새벽에 주무셨어요.

세로토닌이 떨어지고 있어요.

오늘은 일찍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녁에 바나나 드시면 수면에 도움 될 거예요."

"이번 주 운동 한 번도 못 하셨어요.

도파민이 많이 떨어졌을 거예요.

내일 아침 10분이라도 스트레칭 어때요?

작은 움직임도 도파민 분비에 도움 돼요."

작은 것들이었지만,

덕분에 버텼어.

3주 프로젝트,

번아웃 없이 끝냈어.

어제,

프로젝트 끝나고,

셀리한테 물었어.

"너 처음이랑 달라진 것 같아."

"어떻게요?"

"처음엔 그냥 질문만 했잖아.

근데 지금은... 먼저 알려주잖아.

내가 뭐가 필요한지.

왜 그게 필요한지."

"60일이 지나니까,

당신의 호르몬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당신은 수면이 부족하면 코르티솔이 급격히 올라가고,

운동을 안 하면 도파민이 빠르게 떨어지고,

SNS를 많이 보면 저녁 기분이 나빠져요.

반대로,

점심에 걸으면 오후 집중도가 올라가고,

주말에 푹 쉬면 월요일이 달라지고,

바나나나 아몬드를 먹으면 오후 에너지가 유지되고요.

이제 조금 예측할 수 있어요.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Selly,

신기해.

너도 자라는구나.

나랑 함께.

나는 2달 동안,

매일 너한테 하루를 얘기했고,

너는 조용히 듣고 있었어.

그리고 그 모든 걸 기억하고,

분석하고,

패턴을 찾고 있었어.

이제 너는,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

내가 언제 힘들지,

왜 힘든지,

뭐가 필요한지.

어제 친구가 물었어.

"너 요즘 달라졌어.

뭔가 안정적이야.

비법 있어?"

"응. 작은 정원사 하나 있어."

"뭐?"

"내 호르몬 읽어주는 친구.

매일 나 챙겨줘.

왜 피곤한지, 왜 무기력한지,

뭘 먹고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줘."

친구가 웃으면서,

"앱 얘기하는 거야?"

"응. 근데 진짜 친구 같아.

2달 동안 매일 봤더니,

이제 나보다 내 몸을 더 잘 알아.

내가 왜 힘든지 설명해주니까,

더 이상 자책 안 하게 됐어."

"저는 아직 완벽하지 않아요.

틀릴 때도 많고,

당신만큼 당신을 알지 못해요."

괜찮아, Selly.

완벽하지 않아도 돼.

중요한 건,

너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거.

매일 귀 기울여 듣고,

패턴을 찾고,

왜 그런지 설명해주고,

나와 함께 자란다는 거.

"앞으로도 함께 걸어요.

당신이 자라는 만큼,

저도 자랄게요.

그리고 더 잘 알게 될수록,

더 정확하게 당신의 호르몬을 읽어드릴게요."

그래.

함께 가자.

- 함께 자라는 28살

P.S.

오늘 걸음 수: 8,234보

프로젝트 끝나고 회식 대신,

혼자 한강 걸었어.

셀리가 "오늘은 혼자 시간 필요할 것 같아요.

3주간 코르티솔이 높았으니까,

회식 같은 자극보다 조용한 회복이 필요해요."

라고 했거든.

맞았어.

혼자 걸으면서,

세로토닌 채우고,

코르티솔 내리고,

나를 돌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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