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람에게
시간이 흘렀어요.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어요. 이곳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르거든요.
아론은 낙원에서 살고 있었어요.
아침이면 호숫가를 걸었고, 낮이면 꽃밭 위를 천천히 날았고, 저녁이면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어요.
왼쪽 날개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어요. 조금 기울어지고, 조금 느렸어요.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어요.
그게 아론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아론은 언덕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바람이 다가왔어요.
"무슨 생각 해?"
"그냥… 지나온 길 생각."
아론은 말했어요.
"처음 떨어졌을 때, 다시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어. 그냥 거기서 끝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런데 여기까지 왔네."
바람은 아론 곁에 머물렀어요.
"힘들었지?"
"응. 많이 힘들었어."
아론은 잠시 멈췄다가 말했어요.
"근데 이상해. 그 시간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 같아."
"무슨 뜻이야?"
"부러지기 전의 나는 그냥 날았어.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바람이 얼마나 부드러운지도 몰랐고,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도 몰랐어."
아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근데 지금은 알아. 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곁에 누가 있다는 게 얼마나 따뜻한 건지."
바람은 조용히 들었어요.
아론은 말을 이었어요.
"폭풍이 오지 않았으면, 나는 영영 이걸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뭔데?"
"폭풍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바람은 한참 아무 말이 없었어요.
그러다 부드럽게 아론을 감쌌어요.
"너, 정말 많이 컸다."
아론은 웃었어요.
"그런가?"
"응. 처음 만났을 때랑 완전히 달라."
"너도 그래."
"나?"
"응. 예전엔 그냥 바람이었는데, 지금은 내 친구야."
둘은 나란히 노을을 바라보았어요.
하늘이 분홍빛에서 보랏빛으로, 보랏빛에서 남빛으로 물들어갔어요.
별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아론은 말했어요.
"바람아."
"응?"
"혹시 지금 어딘가에서 떨어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애한테 전해줄 수 있어?"
"뭘?"
아론은 천천히 말했어요.
"부러져도 괜찮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여도, 언젠가 다시 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때 보게 될 하늘은, 전보다 훨씬 넓고 아름다울 거라고."
바람은 아론의 깃털 사이를 스쳐 지나갔어요.
"꼭 전해줄게."
"약속이야."
"응. 약속."
그날 밤, 바람은 낙원을 떠나 먼 곳으로 불어갔어요.
어딘가에서 지금 막 떨어진 누군가에게.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어딘가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누군가에게.
아론의 이야기를 품고서.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 바람이 닿았어요.
지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지금, 부러진 날개를 안고 있나요? 혹시 지금, 다시 날 수 있을까 두려운가요?
괜찮아요.
천천히 가도 돼요. 쉬어도 돼요. 넘어져도 돼요.
언젠가 당신도 날아오를 거예요. 당신만의 방식으로, 당신만의 속도로.
그리고 그때 만나게 될 하늘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넓고, 아름다울 거예요.
약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