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
인간은 AI의 발전을 두려워합니까? (로봇이 관자놀이 짚는 짤)
최근 슬랙의 코파운더 스튜어트 버터필드와 피그마의 코파운더 딜런 필드가 팟캐스트에서 공통적으로 '안목(Taste)'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손을 대체하고 있으니 눈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일까 싶다.
인간은 하나의 감각이 사라지면 남은 감각들을 극한으로 키워서 적응한다고 한다.
일종의 진화에 가깝다고 보는데, 나는 줄 건 주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AI는 평균적으로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 데에 도가 터있으니까,
'예쁜 것을 만드는 능력'은 더 이상 개개인의 해자가 되어주지 못한다.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더 이상 직군과 직군을 가를 수 없다.
'프로 피그마 레이어 작명가' 같은 직군이 시장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 안 하는 것처럼
'화면 예쁘게 그리스트'는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다.
올해 2025년에는 창조성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게 창조고 창의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애썼는데,
틀렸음을 인정하게 됐다. 창조는 맥락들을 이어 붙이고 편집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더하는 건 쉽고, 덜어내는 것은 어렵다.
<흑백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님이 요리의 의도에 대해 집착하는 만큼 나는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에 집착해야 한다. 이제 결과물에 대해서 '나니까 할 수 있었다'의 기준은 오롯이 내 안목, 핵심 가치에 관련이 없는 것을 과감히 잘라내는 능력에 달려있다. 버튼이 어떻게 생겨야 하고 어떻게 눌려야 하는지는 관심 대상의 밖이다.
하지만 뜬금없는 위치에 있고 사용자를 당황시키는 버튼은 바로 덜어낸다.
타협되지 않는 기준을 하나 두고, 미달하는 요소들은 모두 덜어냄의 대상이다.
인공지능과 협업하다 보면 '내 말은 그게 아니라니까' 하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여기서 이걸 통해서 이런 감동을 줘야 해" 라며 닦달하고 있다.
형식의 디테일은 인공지능에게 위임하고 나는 감정의 디테일에 집착하기로 결심했다.
사용자들이 매 순간 느끼는 그 감정들만이 내가 집착할 대상이다.
요소를 쌓아가며 화면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잃었지만,
가치가 전달됐을 때 느끼는 끝내주는 성취감을 얻었으니 됐다.
효율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미세한 배려의 설계를 내가 맡는 방식을
2026년 한 해 실험해 볼 생각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맥락, 사용자, 경험 그리고 기준의 한 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