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확행 Feb 02. 2024

2124년 2월 2일

지금 여기는.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노란빛 바다가 태양의 등장을 반긴다. 유일한 쉼이 되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창 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같다. 쓰레기와 파괴된 건물, 그리고 먼지가 섞인 회색의 하늘. 이곳은 이미 지구가 기후위기에 빠진 뒤의 모습이다.




한숨을 내쉬며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무더운 날씨를 대비하기 위해 지하로 향한다. 지하 도시는 철거된 건물 아래에 만들어진 공간으로, 식물이 거의 자랄 틈이 없다. 그저 산소 생성을 위한 작은 공원이 있을 뿐.



오늘도 빈약한 아침 식사를 챙겨 먹고, 지하 도시에서의 나의 소임을 위한 하루를 시작한다. 전기가 끊기고,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는 자원을 공유하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서로 돕고 있다. 나는 공동체 내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먼저 쓰러진다. 적절한 타이밍에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부모님-아이로 이루어진 가정은 손에 꼽을 정도다. 100년 전에는 독박육아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나에겐 참 생경한 표현이다. 아이를 오롯이 혼자 키운다? 물 한 잔,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 하는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생존을 위해서 연대는 필수불가결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연대'의 호흡은 짧고 불규칙적이다. 자원을 구하고 살아 위해 공동체 별로 서로 싸우고 연대하기를 반복한다. 자원 탐사팀으로 도시 중심부에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상황은 더 심각한 듯했다. 옛날에는 번화한 상업지구였으나, 이제는 그저 폐허일 뿐인 그곳. 화려했던 전성기가 사라진 그곳에는 비참함만 남아있는 것 같다 했다. 현재 남아있는 그곳의 자원도 금세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며, 공동체 간의 짧은 평화도 조만간 흔들리지 않을까 친구는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였다.

@Bing Image Creator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의 시나리오들이 모두 현실이 된 지 오래다. 100여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밉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았으면서. 무엇보다도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서 왜 강 건너 불 구경하는 구경꾼 역할만 자처했는지.



묻고 싶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2124년에 지구에서 살아갈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이라도 해 보셨는지.


@Bing Image Creator
이전 09화 마일리지 적립 안 해주셔도 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