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세련된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특히 버려지는 것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무언가 새롭게 만들어서 쓰는 일이 참 어렵다. 미술 영역에서 압도적인 똥손의 성향을 보이는 나. '그리기'는 낙제점이고, '만들기'에도 도통 관심이 없다. 일단 이걸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만든다 하더라도 예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선뜻 시도해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재작년. 집을 고치려고 싱크대 수납장을 비우다가 나 자신에게 기함했다. 깨끗이 씻어 놓고 나니 그냥 버리기 너무 멀쩡한 파스타 소스병들이 그렇게 많이 처박혀 있는지 몰랐다. 혹시나 언젠가는 쓸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 과거의 나 자신이 웃긴다. 나 따위가 업사이클링을 감히 꿈꾸었다니.
환경재단에서 진행하는 설문조사에 응하면 업사이클링 굿즈를 랜덤으로 보내준다는 피드를 보고 급 관심이 생겨 나의 개인정보 몇 개와 설문 항목에 답을 해서 보냈다. 택배비도 안 받고 공짜로 보내준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잊고 있었고, 얼마 전 낯선 택배를 받았다.
재생지로 만든 박스
‘RE:EARTH’는 2022년 롯데백화점에서 론칭한 환경캠페인 브랜드다.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이라는 슬로건 아래 현수막. 보냉백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2022년 추석부터 아파트 단지와 사은행사장에서 명절 선물세트의 보냉 가방을 회수하여, 카드홀더와 크로스 파우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휴대폰이랑 손수건 넣으면 딱 맞는 사이즈. 속에는 2칸으로 나누어진 안 주머니도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세련되어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정말 쓸모가 있는 물건이었다. 누군가는 정말 잘 쓸 것 같다. 다만 안타까운 건 저 반짝반짝 은색 미니백을 들만한 센스 있는 패션 감각과 당당한 애티튜드 혹은 뭐든 소화해 내는 산뜻한 젊음. 그것들이 나에게는 없기에 '누가 저것을 쓸 것인가'의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엄마! 이건 뭐예요?"
친구와 농구 한 게임 뛰고 온 작은 아이가 급 관심을 보였다.
이건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이게 왜 우리 집에 왔는지 소상히 설명을 드렸더니 둘째가 가방을 덥석 쥐어들었다.
"오! 그럼 이건 제가 가지는 걸로!"
가방을 둘러멘 아이의 신남이 나에게 전해져 기분이 좋다. 이 기운이 지구에게도 전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