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확행 Mar 19. 2024

딸들이 사는 집

단지 네 시간만 있었을 뿐인데

“부동산에 다녀올 일이 있는데, 아이들만 집에 있을 거야. 볼일 보고 금방 다녀올게”

“어! 우리도 도착하면 얼추 시간 맞을 것 같아.”



시댁에 들러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러 대구로 향했다. 다들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산다.  이렇게라도 얼굴을 봐야겠다 싶어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올해는 꼭 보자’라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대신, ‘기회 되면 한 번 보자’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큰일 나지 않는 약속만 했기에.



“아이들끼리 집에 있을 수 있어? 너희 아이들 벌써 그만큼이나 큰 거야?”

“아이들 두고 다니는 거 오늘이 두 번째야. 큰 아이가 고학년이 되니깐 용기가 나더라.”


2014년.

친구가 조리원에서 나왔다고 해서 인사를 하러 들렀다. 친구는 얇은 실내복을 여러 벌 걸쳐 입고 있었고, 손목에는 아대를 둘렀으며 갓난쟁이는 요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가지런히 접혀 있는 아기띠. 아기가 울자 친구의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세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았다.



“아기띠를 쓰지 왜 맨손으로 안고 있어요? 힘들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기가 너무 작아서.”  



신생아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초보 부모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목을 겨우 가누는 신생아를 키우는 내 친구에 비해, 난 걷는 아이와 가끔 걷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경력 만땅의 아기띠 전문가였다. 3년 전만 해도 갓난아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남편은 어느새 숙련된 조교가 되어 <안전하고 신속하게 아기띠를 메는 방법>을 나와 함께 시연했다. 그때 우리는 그랬다.



“이모,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현관 앞에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예쁜 초등 여학생이 문을 열고 서 있다. 세상에나! 남의 집 아이들은 참 빨리 큰다. 아기띠에 안기지도 못했던 저 아이가 저만큼이나 컸다니.



“잘 지냈어?”

난 내 친구에게 물었는데, 어느새 자기 엄마옆에 착 달라붙어있던 큰 딸이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생활은 어때? 친한 친구는 누구야?”

단지 두 질문만 던졌을 뿐인데 재잘재잘 조잘조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 집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사운드, 상상할 수 없는 대화의 양이다.

“가현아~!”

아이를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다. 나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저 부드러움.



한편 나는

기분이 매우 좋으면  우리 큰 아들~! 우리 작은 아들~!

기분이 좋으면 당근~! 기타~! (원래 누구야~라고 잘 안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당근아! 기타야! (‘아’와 ‘야’에 엑센트를 주고)   

기분이 더 나쁘면 김당근! 김기타!

기분이 완전히 나쁘면 야! 김당근! 야! 김기타!


“오셨어요?”

친구 남편이 볼일을 다 보고 커피와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남편과 악수를 하고 식탁에 다 같이 앉았다. 새 근무지 이야기, 체력 이야기, 건강 이야기, 뱃살 이야기, 탈모 이야기, 대출금 상환 이야기, 투자 이야기... 흔한 대한민국 40대의 정감 어린 대화들이 이어졌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이들은 심심했는지 식탁옆을 기웃거린다. 내가 씩 웃으며 소파로 자리를 옮기니, 큰 딸이 친구들와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그네들의 근황을 전한다. 친구 사진이 없는 둘째딸은 계속 언니를 쳐다보고 있다.

"채린이는 요즘 뭐 재미있는 거 해?"

쟤네 엄마귀에다 뭐라고 속닥속닥 하더니 수줍게 춤사위를 펼친다.


나루토 춤이라는 걸 실제로 처음 봤다. 우리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귀여운 장기자랑! : )


“딸아이들이라 다르긴 다르다. 예쁘다 예뻐”

“예쁜데 너무 어려워. 감정선 다 맞추고 응대하기 힘들어. 예민하고 섬세하고. 아무튼 쉽지 않아.”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친구 같은 딸은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고!”

“그래도 난 심플한 아들 키우기는 니가 지금은 많이 부럽다.



서로 가보지 못한 육아의 길을 적당히 아쉬워하며 꽤나 부러워하면서, 이만큼 아이들을 키운 우리들의 고됨과 노력을 서로 치하했다.

“이모! 이거 받으세요. 선물이에요!”

큰 딸이 강아지 같은 눈빛을 하고 귀여운 스티커를 나에게 내민다.



여기는 딸들이 자라나는 곳이다.

그 집에 단지 네 시간만 있었을 뿐인데 내 휴대폰 케이스는 이렇게 귀여움을 장착하게 되었다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선량한 척하는 차별주의자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